-
-
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 방청석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분명 법률적으로는 이 행위는 '정교'라는 한 마디로 몰아붙여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피고인의 이 고백 속에는 하나의 살아 있는 '인생'이 있었다. 물론 특이하기 그지없는 상태였지
만 그래도 생명을 지니고 유전하는 인간의 생활을 법률적인 칼날로 도려내려다 보면 이런 종류의 오해
가 도처에서 발생한다. - p.273 ]
법정물...이라고 하나... 그런 류의 영화나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숨겨진 사실들이 밝혀지고 뛰어난 실력의 변호사가 거짓을 얘기하는
증인에게 질문을 퍼 붓다가 진실을 토해내게 만드는 그런... 재판 막바지에 가까스로 법정에 뛰어들어온 조력자로부터 건네진 귀중한 증거자료로 판을
뒤집거나, 변호사의 혹은 피고의 감동적이고 진실된 호소에 판결이 결정나는... 물론 배심원제로 진행되는 미국의 법정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증인, 증거의 신청 및 제출은 사전에 미리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심문 때 사용되는 질문 역시 사전에 미리 제출되어 상대방도
모두 알 수 있다. 극적인 역전이나 드라마틱한 전개는 결코 없다. 그래도 역시 이런 류의 이야기는 몹시도 매력적이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로맨스, 액션, 첩보 등 그 어떤 형식을 가져다 끼워맞춰도 가능한 분야이다. 그 때문에 다양한 재미와 버라이어티한
전개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정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의 미스터리라... 자극적인 제목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표지에 솔깃했다가 되려 실망감이
커질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단지 우려였다. 쫓고 쫓기는 추적씬이 없어도, 이리저리 헤매며 증거를 찾고 목격자를 물색하는 장면을
빼고도, 고독하고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증명했다. 사람의 진실은 결코 예,
아니오로 대변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사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고 확인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인은 잡혀서 벌을 받고 피해를 당한 이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고통받는 이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결과임을 믿고 기대하기 때문에 이런 류의
스타일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법정 미스터리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은 별개로 하고 진실을 쫓는 변호사, 경찰 등이 활약하는 법정 뒤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거기에서의 법정은 그냥 모든 진실을 밝히는 무대로서의 역할에 한정되었었지만, 이 책은 시작도 끝도 법정이
전부다. 이야기 자체도 괜찮았지만 이런 시도를 하고 또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작가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