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충분히 흥미롭고 캐릭터도 맘에 들고 몇몇 설정도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음에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읽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챕터가 자주 나뉘어져서인지 내가 산만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내려놓게 되지는 않더라... 참 안 읽히네...하면서 내려두었다가 다시 돌아와 손에 들고 더 읽게 되곤 했다. 매끄럽게 쫘악~ 진행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눈길을 끌고 마음에 남는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아 본다면 인물들이 어린 루스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루스는 아직 4살이고 호기심이 많고 납득이 갈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왜? 언제? 어떻게? 루스를 둘러싼 엄마 매리언이나 아빠 테드, 에디까지 루스가 이해할 만한 언어로 진지하게 답을 고르고 답을 주는 장면들이 참 좋더라. 또 루스의 두 오빠, 루스가 태어나기 전에 죽어버린 토머스와 티모시의 사진들이 집에 주욱 걸려있는데, 각각의 사진에 대한 스토리를 엄마와 루스, 혹은 아빠와 루스, 에디와 루스까지 서로 서로 물어보고 들려주고 하는 장면들이 모습만 달리한 채 여러번 반복 되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진에 찍힌 장면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 후의 상황까지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루스의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자라났으리라.

 

존 어빙은 나이에 대해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에디가 메리언에게 끌리고 후에 나이 많은, 그것도 훨씬 많은 여인들에게만 끌리는 부분 뿐만 아니라 어린 루스와 에디에게서도 그런 점이 엿보인다. 루스는 도저히 네살배기로 보이지 않는다. 본인의 말처럼 결코 버릇 없지도 않으며 그녀의 호기심과 질문은 늘 진지하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시 분명하게 구분한다. 루스의 요구는 늘 당당한데 이유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당위성까지 갖추고 있다.(새로 표구한 사진을 찾으러 가자고 할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에디 역시 자신감 부족하고 내성적인 성장기 소년에 불과하지만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늘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한다. 상대방의 처신이나 하는 모양새가 결코 선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하더라도 결코 비뚤게 바라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결코 어린 나이 특유의 순수함과는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담아 이해하고 다가가려고 하는 것은 그냥 하나의 천성이다. 존 어빙에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모양이다.

 

[사진 유람은 안방까지 이어졌다. 에디는 한 번도 안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고 그곳에 걸린 사진도 본 적이 없었다. 매리언이 사진마다 거기에 깃든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계속 집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방베서 방으로, 사진에서 사진으로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에디는 루스가 토머스와 티모시의 맨발이 종잇장으로 덮인 일에 왜 그토록 심술을 부렸는지 이해했다. 루스는 아주 여러 차례, 아마도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 과거로의 여행을 하곤 했고, 네 살배기 루스에게는 사진에 깃든 이야기가 사진 자체만큼이나 중요했으리라. 어쩌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루스는 죽은 오빠들이 내뿜는 압도적인 존재감뿐만 아니라 중요하기로 치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옶는 그들의 부재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사진이 곧 이야기였고 이야기가 곧 사진이었다. 에디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을 바꾸는 일은 과거를 바꾸는 일만큼이나 어불성설이었다. 루스의 죽은 오빠들이 살았던 과거는 멋대로 바꿀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에디는 꼬마에게 어떻게든 잘못을 보상하리라고 다집했고 죽은 오빠들에 관해 루스가 들었던 모든 이야기는 절대로 바뀔 리가 없다고 안심시키리라 마음먹었다. 꼬마는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적어도 그 점만은 믿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말 그럴 수 있을까? - p.110 ]

 

[거기 식당에서, 에디는 구운 치즈 샌드위치와 프렌치 프라이가 놓인 접시에 걸쭉한 케첩을 쏟아 이겼다. 그러고는 루스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잡아 케첨에 담갔다가 종이 냅킨에 부드럽게 찍어눌렀다. 에디는 오른손 집게 손가락의 지문 바로 옆에 두 번째 지문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루스의 왼손 집게 손가락을 사용했다. 에디는 루스가 서로 다른 두 지문을 볼 수 있도록 지문이 확대되어 보이는 유리잔을 냅킨 위에 놓은 다음 그것을 루스에게 보여주었다. 흉터가 거기 있었다. 영원히 거기에 있으리라.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수직으로 베인 가느다란 흉터는 유리잔을 통해 원래 크기의 거의 두배로 보였다.

"이게 네 지문들이야. 아무도 너랑 똑같은 지문을 갖지 못할 거야." 에디가 말했다.

"흉터는 언제나 여기 있는 거야?" 루스가 다시 물었다.

"흉터는 영원히 너의 일부로 남을거야." 에디가 약속했다. - p. 218~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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