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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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어린 시절, 우리집은 무척 가난했었다. 리어카에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싣고 엄마, 아빠 동생들과 야반도주하듯 이사다닌 기억이 1년에도 수차례였다. 작은 손수레에 모두 들어가던 우리 식구들의 살림살이가 들어 있던 리어카 제일 위에 있던 것은 책들이었다. 입을 것, 먹을 것도 부족하던 그 시절에도 엄마아빠는 나와 동생들에게 책을 구해 주었고 돈 버느라 바쁜 부모님 없이 그 책들을 넘겨 가며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었다. 당연히 그 때 읽던 책들은 새 책이 아니었었다. 얻어 온 것, 주워온 것 그런 책들이었지만 달리 놀아줄 상대도, 가지고 놀 장난감도 없던 나와 동생들은 먼지 쌓인 다락방 구석에서 그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전기세를 아끼느라 해가 지면 불을 거의 키지 못 했던 터라 우리를 일찍 재우려는 엄마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살짝 들춰가며 읽곤 했었다. 그로 인해 시력은 나빠졌지만 추억은 쌓여만 갔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방학 중에 학교 도서관이 공사라도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들의 배려로 교무실에서 책을 읽다 온 기억도 많다. 집안 살림이 조금 나아지자 손에 들어오는 책들은 더욱 늘어갔고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 언니들에게 빌려 읽게 되는 양도 늘었다. 기억에 남는 것들도 많고 지금은 잊어 버린 이야기도 많았다. [어릴 적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잊고 있었던,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뻔한 기억도 다시금 마구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시절 책들은 해적판이나 복제판 등이 많았던 터라 최근에 나오는 개정판이나 완역판과는 제목도 등장인물의 이름도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어릴 적 읽었던 그 책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어졌다. 그래도 가만히 책을 들여다 보면 아, 나도 이거 읽었었는데...하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생긴다. 오늘도 나는 잊고 있던 추억 하나를 과거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작가는 나와 동갑이거나 1,2살 정도의 차이가 나는 동년배인 듯 하다. 그녀가 읽은 책이나 그녀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더욱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잃어버릴 뻔한 소중한 기억을 내게 되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느낌으로 편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문장 역시 마음에 들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 것 같은 기쁨까지 얻을 수 있었다.

 

[말괄량이 쌍둥이], [당나귀 가죽], [추위를 싫어한 펭귄] 같은 경우는 책에 등장한 인용과 줄거리, 삽화를 보기 전까지 정말 잊고 있었다. 얼마나 좋아했던 이야기인데 잊고 있을 수 있었을까... 아래는 [비 공주]에 나오는 주문이다. 얼마나 재미나게 읽었었는지 생각이 나서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다.

 

"강은 바싹바싹

샘은 메마르고

숲은 잠잠하네

밭두렁 위에서는

불난장이 껑충껑충

눈을 뜨셔요

눈을 뜨셔요

엄마가 캄캄한 곳으로

데려가기 전에"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 습관들 덕에 나는 지금도 책을 좋아하고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보다 다영한 분야와 장르의 책들을 읽게 되었지만 아직도 한번씩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들춰보고 사게 되는 것은 추억이 갖고 있는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장에 자리가 모자라 방 바닥에까지 여러 줄로 쌓여 있는 책들 덕에 욕심 내기는 어렵고, 작가의 집에 한번 놀러가 옛기억들이 서려 있는 책들을 뒤적여 보고 싶다. 어쩐지 거기선 책먼지가 이는 게 아니라 고소하고 달달한 향기가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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