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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넬레 노이하우스 이후 무수히 쏟아지는 독일 출신 스럴러 작가들 중 드뎌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생겼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온 책인데 제목과 표지 그림이 너무 적나라해서 좀 망설이게 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작품 속 범인은 눈알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애는 아니고 걍 경찰들이 범인을 부르는 별명일 뿐이지만 저 적나라한 표현은 범인의 잔임함과 결말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대개 첫 살인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대다수의 작품들과 달리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벌써 앞 선 몇몇의 잔인한 사건으로 인해 범인은 '눈알수집가'라는 별명을 얻은 뒤이며 주인공은 책을 그만 보고 덮으라 한다. 작가는 범인이 그러는 것처럼 작품 진행 역시 일종의 게임처럼 꾸며 놓았다. 독자는 주인공이 독서를 말리는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며 책 속의 각 챕터에 매겨지는 숫자가 거꾸로 진행되는 것을 보며 호기심을 증폭시켜 갈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지니는 바는 책 말미에 밝혀진다.
전직 형사였던 초르바흐는 몇년 전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범죄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형사였던 과거의 경험을 살려 최신의 정보와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써 나가는데,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정신병에 시달리며 가족과도 소원해진 상태다. '눈알수집가'에 대한 기사를 써 나가다 함정에 빠져 주요 용의자가 되자 맹인 알리나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 간다.
작가는 이 끔찍한 스릴러를 쓰면서도 피식~ 하는 웃음을 짓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 살벌한 사건의 진행을 쫓으면서도 유머 감각을 결코 잃지 않고 꽤나 냉정하게 써내려 가는 탓에 '눈알수집가'의 잔인함과 초르바흐가 처해 있는 갑갑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더욱 리얼하게 다가온다.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를 제공하는 알리나가 '과거를 보는 능력'을 지닌 자라는 점에서 살짝 반칙의 기운을 느꼈다. 사실 장르 소설에서 이런 초능력은 훌륭한 탐정이나 영리하고 끈기있는 형사의 매력과 범인과 추적자 간의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을 좀 떨어뜨린다. 범인이 흘린 단서, 요리조리 꿰맞추는 탐정의 추리, 프로파일러와 법의학자 등이 밝혀내는 정보와 증거들을 모아 범인의 윤곽을 좁혀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실마리가 제공되고 내비게이션 안내처럼 진행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장르 소설이 가진 본질적인 재미와 긴장감을 툭 끊어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괜찮은 작품인데 요게 좀 걸리네...했었는데 책 후반부에서 이런 알리나의 능력마저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해 버리는 작가의 솜씨를 목격하고 바로 깨갱했다. 그래, 내게 감히 누굴 평가할 자격이 있던가...
또 하나, 이런 류의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들은 사실 제대로 된 삶을,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연인이나 와이프가 있었어도 헤어졌고, 있다 해도 사이가 안 좋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 오로지 일과 자신의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시간 이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틈이 없이 살아간다. 심각함의 정도만 다를 뿐 정신적인 문제나 신체적인 문제도 하나둘쯤 갖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 것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나간 시간이나 놓쳐버린 순간에 대한 후회로 머리 속은 가득한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작가는 그 부분 역시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다. 초르바흐가 일에 빠져 소원해진 아내와 아이에 대한 관계는 다른 작품에선 주인공 캐릭터 설정을 위해 흔하게 등장하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했지만 이 책에선 다르다. 이런 부분 때문에라도 나는 이 작가를 높이 치게 되었다.
범인이 하는 짓거리나 작품 돌아가는 상황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섬뜩하며 찝찝함만 가득 남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무더운 여름에 한순간이 나마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