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이든 필포츠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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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 불리우는 작품들은 대개 거리의 풍경, 저택의 구조와 디테일, 등장인물의 성장배경이나 옷 차림새, 동선과 시선이동, 모임 장소의 구체적 묘사와 분위기 등등의 설명으로 방대한 분량의 지면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사회적 관습과 전통이 구시대의 인물들의 언어와 행동반경을 제약하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이 처한 상활릉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로 넘어와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사회/문화 분야 역시 급진적인 탈바꿈을 거듭했고,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방종의 시대가 도래하자 작가들은 개성과 참신함을 무기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했다. 정신없이 독자를 휘몰아치며 혼이 쏙 빠지게 만드는 빠른 전개와 치밀한 설정이 높이 평가 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 클래식을 선호하는 이들은 너무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근현대물들이 거북하고 불편했으며 반면 신세대들은 과거의 방식이 너무 고루하고 답답해 보여 극명한 호불호가 갈리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특징들 덕에 고전이라 불리우는 많은 문학들은 약간 느릿하고 코가 몇개 빠진 듯한 뜨개질거리처럼 얼개가 헐렁하다. 이는 때론 결말에까지 영향을 미쳐 뭔가 좀더 확실하게 못을 박아주기를 기다리던 독자들의 기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이런 점들은 그 시대적 유물이자 특유의 재미요소이기도 하다. 좋네나쁘네 논할 거리가 아닌 취향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장르소설분야에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차이점이고 이 책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에서 절절하게 체험할 수 있다. 주인공 마크 브렌던 형사는 도주한 살인자를 오랜시간 추적하다 잠정 자살로 결론짓고 있었는데, 뒤늦게 그와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그 상황에서 형사는 살인범을 바로 뒤쫓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으며, 심지어 다음날 늦잠까지 잔 뒤 그를 데리러 온 목격자에게 몸단장을 마친 후 함께 아침을 들고 가자고 여유를 부리기까지 한다. 살인범은 전쟁 중 얻은 신경증으로 인해 미치광이로 여겨지는 상황인지라 요즘 나오는 장르소설에서라면 저런 형사는 당장 모가지 감이 아닐까 싶다. 사건현장을 살펴보고 범인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 밤 늦게 집에 들어가 그제서야 종일 커피 외엔 아무 것도 먹은 게 없자는 식의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 미국이나 일본판 작품들에 반해, 꼬박꼬박 끼니와 와인, 차를 챙기는 점은 영국인 특유의 모습까지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추적에 나서며 그날 먹을 점심과 요깃거리까지 잘 챙기는 모습들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중반부 이후에 미국인 탐정 피터 건스가 등장하여, 용의자에게 연심까지 품은 마크 브렌던이 파악하지 못한 사건의 실상에 다가가니 그나마 작품이 마무리 될 수 있었다.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추리,형사소설 특유의 재미는 조금 떨어질지라도 고전 특유의 문장과 서술 방식을 잘 전달하고 있으며 특히 본래 순문학을 집필했던 작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있어 새로운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요즘같으면 희대의 살인마니 사이코패스니 하며 호들갑을 떨 범인에 대해서도 조용조용 가만가만 다루는 모습이 새롭다면 새로울 것이다.

 

또한 책말미에 역자가 소개하는 작가에 대한 글도 잊지 말고 챙겨보기를...

장르문학 분야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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