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다. 이후의 작품 방향을 미루어 짐작해 볼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여러가지 트릭과 한가지 사건에 얽힌 여러 사람과의 관계 등은 그의 책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데뷔작인만큼 연결고리나 관계의 깊이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고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으로 담담하고 조용한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건의 동기라든지, 풀어가는 방식이랄지 주변 인물들과의관계랄지... 여학생들의 관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그런지 데뷔작인만큼 치밀한 기교가 부족한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순수하고 깨끗하고 섬세한 느낌이 충만하다. 미스테리 소설에서 이런 느낌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하물며 공대생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회사생활의 지겨운 밥벌이를 버티며 틈틈히 써내려 간 느낌이 전혀 없다. 아직 미스테리계의 초보 입문자인 내가 이런 식으로 미스테리를 분류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겠지만 끔찍한 과거의 사건에 사로잡힌... 원망과 한이 철철 넘치는, 그야말로 주인공의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분위기나 혹은 소름이 오싹끼칠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시선이 가득하다든지 살인이란 단어가 잘못 쓰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뚱발랄한 느낌의 책들이 지금껏 내가 본 미스테리의 전부였다. 그런만큼 [방과 후]는 독특하다. 술술 읽히며, 범인이 빤~히 보이고, 결말이 너무 쉽게 예상되는 것이 아쉽지만 첫 작품에서 놀랄만큼 신선한 분위기와 시선을 끌어낸 것에서 하가시노 게이고를 이 분야의 최고로 꼽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