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미스테리 작가 미야베미유키의 작품이다. 한 가지 사건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각 인물들이 소지하고 있는 "지갑"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이른바 말하는 3인칭 작가 시점에서 써내려가는 듯하면서도 "지갑"이기 때문에 보고 듣지 못한 이야기(사물함속에 들어가 있다던지 하는...)나 사건 관계자들의 성향이나 배후를 설명해 줄 단서가 되는 말들의 의미를 모르는 체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욱더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끔 배려하는 친절한(?) 미스테리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화차, 이유에 이어 3번째 접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흔히들 알고 있는 밀실 살인사건류나 전설, 선조로 부터 남겨진 무언가를 뛰쫓는 식의 일반적인 추리/미스테리와는 달리 9시 뉴스에 보도 될 만한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를 가진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묘한 기호를 분석한다던지, 현장에 남겨진 갖가지 단서를 연결지어 범인을 찾아내는 이른바 셜록 홈즈나 명탐정 코난류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의 작품엔 한가지 사건(실제로 죽는 사람이 하나란 의미가 아니라)에 연관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조차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러 그때까지 펼쳐 놓은 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이 각각의 고리로 사건과 연결되면서 매듭지어지는 것을 읽을 때면 잔뜩 들이마신 숨을 시원스레 내쉬게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갑이다"는 매슬로우가 얘기한 인간의 5대욕구 중 마지막인 자기실현의 욕구가 비뿔어진 방향으로 발전된 인간의 이야기이다. 4번째 욕구인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일 수도 있다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범인이 자신 스스로 아무도(심지어 경찰조차도) 모르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의 진범이란 사실에 혼자 기뻐하는 모습은 누구보다도 자기 스스로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빠져있는 가즈히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유"나 "화차"와는 달리 심리적인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고 같은 이유로 과학적인 수사로 대표되는 경찰 외에 "탐정"이 등장하고 "지갑"이라는 존재가 주인의 심장박동 소리나 발자국, 목소리의 크기에 늘 예민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의 매개체로 "지갑"의 입을 빌린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유"나 "화차"와는 조금 다른 색이 묻어나는 작품이며 훨씬 가볍게 읽힐 뿐더러 내 취향에 잘 맞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