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콩스탕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버리면
더이상 자신의 삶에 즐거움이 없어지리라 판단하고
다른 작가들의 다양한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찾게 된 집근처 도서관에서 그녀는 새로운 설레임을 갖게 된다.
그녀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는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인냥
소설속 문장에 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다.
심지어 책 마지막엔 다음번 읽을 책까지 골라준다.
늘 외롭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던 그녀는
밑줄 긋는 남자의 이미지를 형상화시켜가며 사랑에 빠진다.
어렵사리 알아낸 밑줄 긋는 남자, 클로드에게 실망을 느낀 콩스탕스는
이별을 선언하지만 곧 그 남자는 자신이 밑줄 긋는 남자가 아니라
그런 척 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결국 둘은 진짜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다.

 

주인공은 철저하게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있는 타입이다.
그녀 주위엔 가족과 친한 친구 한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별다른 일상이랄 것도 없는 그녀에게 다가온 밑줄 긋는 남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과 기대, 꿈, 짜릿함을 알려준다.

 

그러나 클로드의 등장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보여주고
그녀는 실망한다.
그녀가 그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공통된 화제와 관심사(진짜 밑줄 긋는 남자는 누구인가에 대하여)가 생기자
클로드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그녀 자신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끝까지 진짜 밑줄 긋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환상은 환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와 밑줄 긋는 남자와의 특별한 연결점이 되는 것은 탁월한 고전들이다.
그것은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밑줄 긋는 남자의 메세지 덕분이긴 하지만
콩스탕스는 소설의 구절들이 마치 자기를 지칭하는 말인양
몰입해서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