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영혼수거자가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서두에서 그가 소녀를 3번 보았다고 한 것처럼 소녀의 삶과 자아는 3단계로 변화한다. 소녀는 입양된 새 가족에게 가는 기차여행 중에 동생이 죽고 혼자 남겨진다. 엄마와 떨어지고 동생을 잃고 양부모를 만나러 가는 기차여행까지가 소녀의 1번째 삶이며 마치 유충과도 같은 시기이다. 그녀의 2번째 삶은 양부모와 함께한 세월이다. 원래의 가족과의 이별은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익숙했던 세계와의 분리... 소녀가 유충에서 번데기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지하실로 대표되는 그녀의 고치 안, 좁은 세상에서 세상과의 고리인 "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성장은 철저히 지하실에서 이루어지며 심지어 외부세계로 대표되는 유태인청년까지 그 지하실로 들어온다. 그녀가 유태인청년, 양부모와 헤어지는 시점에서 드디어 3번째 삶이 열린다. 답답하고 좁은 고치안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익숙하고 안전한 세계와의 이별을 위해 소녀는 큰희생을 치뤄야 하지만 1번째 삶을 벗어날 때도 그러했듯이 성장이란 늘 버겁다. 남겨진 "번데기"역을 했던 소녀의 책을 소녀가 직접 챙길 수 없었던 것까지도 이를 뒷받힘한다. 소녀가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게 해줄 "말"이란 것은 참 더디게 이해되며 느릿느릿 흡수된다. 다른 사람의 "말"인 "책"으로 의사소통 방식을 배운다. 힘들게 얻는 한권한권의 책을 몇번씩 곱씹으며 그것으로 다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아직 스스로의 "말"을 갖지 못한 소녀는 "책"으로 외부와 관계하는 것이다. "말"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입밖으로 내는 순간 그 힘이 발휘 되어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가진다고 한다. 어떤 힘을 담느냐는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의 몫이다. 소녀는 그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