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새로운 시작 - 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심광현.유진화 지음 / 희망읽기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 달째 이어지는 중첩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며 개인의 문제가 인류의 문제이고, 인류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임을 그 어느 때보다 실감하고 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지인들의 확진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자가 검사를 하다가도 전쟁의 희생자와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가 떠올라 고통에 잠기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기후 위기까지 더해져 개인-공동체-생태 간의 상호적이고 혁명적인 인식 전환과 전 지구적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라도 실천할 수 있는 대응책에 골몰하지만, 무기력과 불안이 혼재된 현실에 지쳐버리곤 한다.  


심광현은 전작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2020)에서 “중첩된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공진화가 가능한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으로서 각자의 잠재력을 창조적으로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그림의 새로운 시작>(2022)이라는 제목의 책과 전시로 “그림이 자연생태계-사회생태계-인간생태계의 위기가 중첩되는 오늘의 문명 전환의 인지생태학적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관객의 다성적 목소리와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민중미술 2.0를 구체적인 예술적 실천 방법으로 선언하고 실행했다. 나는 예술은 세상에 더욱 잘 거주하기를 배우는 것이라는 니꼴라 부리요의 정의를 떠올리며 삶-예술/예술(가)-비예술(가)/그림-이야기의 분리와 소외를 예술을 매개로 극복하려던 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역사와 현실의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변혁을 이루고자 했던 민중미술을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생태예술, 공동체 기반의 예술 등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작가로서,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품고 있는 나의 문제의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이 책을 읽으면서 1부 3장 <지각의 생태학과 미적 미메시스>와 5장 <민중미술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시각예술의 새로운 과제와 삼중 미메시스의 순환과 단절에 큰 흥미를 느꼈다. 비예술가인 노년 여성의 주체적인 창작활동과 노동의 가시화를 특정 공동체 기반으로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저자는 시각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는데(48p) 그 중 “이 지구를 다시 ‘거주할 만한’ 장소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에서 깊이 공감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 있는 민중(예술가, 활동가들)에게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2020)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2022)은 과학적,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고 일상의 실천적 방법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기에 주저 없이 추천한다.  


심광현 저자의 논지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펼쳐지고 그 분야의 비전문가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론의 정확한 숙지 여부가 이 책과의 대화에 결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의 사유를 정교화⦁체계화하는 역할을 한다. 덧붙여 이 책에도 유진화 저자가 전시의 모든 출품작을 작가-이야기꾼의 역할을 넘나들며 고유한 서사를 생산함으로써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었다. 다만 심광현 저자도 고백한바, 부족한 여성의 시선과 여성의 자리에 대한 가시적 실천이 다음 행보로 연결되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앞으로 민중미술 2.0이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와 그림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더욱 확장되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
심광현.유진화 지음 / 희망읽기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자의 철학적⦁예술적 실천이 위기에 처한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변혁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은 긍정의 답변으로서 구체적인 방법과 근거를 제시한다. 학문적, 창의적, 일상적 언어로. 


문득 나의 노력과 열정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노려보던 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짐짓 놀라 잠시 멈춰 설 때가 있다. 그렇게 더듬거리며 주변을 둘러볼 때 다시 한 걸음을 떼게 해 주는 대화 상대를 찾게 된다. 


나는 독서에서 기쁨을 넘어 활력을 얻는 사람 중 하나인데, 대개의 이 황홀한 경험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아주 살짝 다른 쪽으로 이동시킨다. 위치가 바뀌니 보이지 않던 대상과 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미세한 운동은 감각적으로 체화되지만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 같은 실증적 결과를 남기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허탈함과 아쉬움이 남진 않는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고 충만한 경험을 만끽한 것으로 족하다. 


이 책은 복잡한 길에서 잠시 멈춰 있던 내 두 손에 흥미로운 지도 한 장을 쥐여 주었다. 1부는 내가 지금까지 밟고 지나온 자리를 좌표로 연결해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일깨워 주었고, 2부에서는 독자와 저자와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한 명의 시민이자 창작자가 되어 사상가와 눈을 맞추고 다양한 표정을 읽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마지막 3부를 읽고 나서는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싶은 마음에 동요되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과 두께가 내뿜는 진지함과 무게감에 다소 위축되었지만 예상외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경쾌했다. 띄엄띄엄 훑어볼 수 없게 만드는 방대한 지식과 사상을 흡수하며 호흡이 가빠질 때쯤 가상의 이야기라는 창작물을 만나 새로운 리듬과 감각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일상이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이 본래 막막해서가 아니라 고정된 시선과 자세 때문이다. 308p


다름을 선택하는 습관은 자신과 환경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종의 마법 같은 힘이 있다. 310p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려면 수직적인 위계를 위한 ‘삭제’가 아니라 수평적인 평등을 위한 ‘수정’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탄생과 죽음이 아닌, 그 사이의 삶뿐이니까요. 418p 


성찰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마음의 내면 운동입니다. 465p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는 게 삶이다. 470p


위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아포리즘과 대사들이 종종 등장하여 독자를 잠시 멈추게 한다. 나는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와 서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주고받는 대화의 기쁨을 느끼면서 그 내용을 메모했다. 


책은 코로나 19 인해 일상의 단조로움과 무기력을 느끼는 사람들, 시민과의 수평적 협업을 모색하는 예술가와 활동가들에게 든든한 파트너의 역할을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아 고민했던 것들을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동시대 학문과 연결하고, 평범하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개인의 일상적 실천을 독려한다. 돌아보면 완독까지 장거리였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로 페이지를 다시 펼치게 만큼 매력적인 책이었다. 앞으로도 나의 사유와 행동을 펼쳐나가는 참고하면서 영감을 받을 있는 소중한 레퍼런스로 삼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