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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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딴방>을 집어드는 나를 보며 그가 말한다.

-당신, 요즘 힘들구나.

-왜 그렇게 생각해?

-힘들 때, 스트레스 심할 때, <외딴방>을 읽으니까. <외딴방>이 당신에게 휴식처잖아.




몇 년 전만 해도, 볼 때 마다 <외딴방>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말했었다.

-읽었는데 또 읽어?

-응.

-도대체 몇 번을 읽는거야?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것들이라 취급되는 것들이 <외딴방> 속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조그맣게 반짝이고 있다. 많이 모여 있는 작은 것들은 슬프다 적어둔 그분의 글처럼 <외딴방> 속에 모여 있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들, 작은 삶들이 하나하나 반짝 빛을 내며 모여 있다.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 
 
국쟁이 오빠를 위해 끼니때 마다 국을 끓이는 모습.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공터 배춧잎을 뽀얀 아침안개 속에서 두근두근하며 바가지에 뜯어담던 모습. 아욱국에 쓱쓱 말은 밥을, 멸치볶음을 팔아픈 외사촌을 위해 떠먹여주던 모습. 하얀 이불호청을 수돗가에서 주물주물 빨아 옥상 빨랫줄에 널어놓은 광경들.
치약 하나로 3년을 쓰며 시골에 돈을 부치는 그녀. 누워있는 동료 문병을 가며 귤 한 봉지를 사들고 걷는 그녀. 마음이 휑해질 때면 노트에 뭔가를 쓰고 편지를 적어내려가던 그녀. 마음아파 밤잠 못이루는 오빠를 위해 상춧국을 끓이는 그녀. 마음상해 있는 이를 위해 국수를 끓여주는 그녀. 그녀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풍경 같은 모습들이 유독 내 마음에 들어온다. 작은 삶들, 작은 시간들, 그래서 반짝이는 그 모든 것들이 폭풍우처럼 사나워져 있는 내 마음에 가만히 내려 조용조용 가라앉힌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나지막히 속삭이는 자장가처럼.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p206)

 


사소한 것들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사소하지 않게 가만가만 적어내려간 글들을 따라갈 때 마다 사나워져 있던 나의 마음은 놀랍도록 진정이 되어있곤 한다. 

 

서른 해를 꼬박 채우고 나서 겨우 분명해진 나의 꿈이, 가끔은 조급하게 나를 다그칠 때면 나의 외딴방에 앉아 <외딴방>을 가만히 따라가며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지금의 내 삶의 시간들이, 아주 사소해 보이는 나의 일상들이 모여 내가 꿈꾸는 나의 풍경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자고. 
 

 

헤아릴 수 없이 여러번 읽어서 이제는 조금씩 낡아가는 <외딴방>이 있기에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꿈이 필요했다고, 순결한 가지 하나를 마음 안에 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는 그녀를 생각한다. 어쩌면 <외딴방>은 내 마음에 둔 순결한 가지 하나를 지켜내는 촉촉한 빗물이 아닐까. 

 

다시, <외딴방>을 펼쳐본다. 벌써 마음이 조용조용 편안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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