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그림책은 내 친구 8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 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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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이 작가를 떠올리면 맨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상상력이에요. 상상을 불어넣어 멋진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작가. 이 작가의 그림책은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그림책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가이지요.
이 그림책 <발가락>에서도 역시나 멋진 상상을 보여주네요.
손과 발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잠들기 전, 발가락을 보며 신나는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아직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발가락이 말해요.
"우리가 여기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라고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겨요.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대로 즐거운 여행 속에 퐁당 빠져들지요.

열 개의 발가락은 뛰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열 개의 계단이 될 수 있어요.

먼 태평양의 섬들이 될 수도 있지요.

그뿐인가요. 해변에서 모래 장난을 할 수도 있어요.

열 개의 탑이 될 수도 있지요.
(점점 여행이 재밌어지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들도 되었다가

무슨 색으로 그릴지 고민하는 그림 도구가 되기도 하지요.

영화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도 되고요.

난쟁이들이 되기도 해요.

휴. 발가락으로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이 이렇게 즐겁고 두근거릴 줄이야. 잠들기 전, 떠날 수 있는 신나는 여행의 티켓을 선물받은 느낌이 들어요.
신나는 상상을 마치고 이제는 잠들 시간. 지친 발을 이제 이불 속으로 넣어요. 오늘은 너무 많이 돌아다녔으니까요. 포근한 이불이 감싸는 감촉이 정말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내일은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발가락만으로 떠나는 신나는 상상 여행.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펼쳐 보이는 이 즐거운 여행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요.
꼭 잠들기 전, 발가락을 이불 밖으로 꺼내 놓고 책을 펼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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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없이, 그저 그림만으로 행복해지는 그림책이 있다. 아이들에겐 무한한 상상의 시간을 던져줄 수 있는 그림책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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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의 모험
옐라 마리 지음 / 시공주니어 / 1995년 4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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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화요일
데이비드 위스너 글.그림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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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빨강 책
바바라 리만 지음 / 대한교과서(단행) / 2005년 10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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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일까?
이슈트반 바녀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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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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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그런 죽음을 만난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그 죽음이 너무 억울해서, 너무 일찍 끝나버린 그 삶이 너무 애달파서 자꾸만 마음속에 맺히게 되는 그런 죽음. 그래서 자꾸만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들어가면 갈수록 삶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삶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그러한데, 하물며 나와 가까운 이의 죽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죽음은 오로지 남은 자의 것이다. 잊으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슬픔이 영원히 박히는 것.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우리를 삶에서 한 발짝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삶에서 영원히 멀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런 죽음이 하루에도 몇 건씩, 뉴스에서 흘러나온다. 그런 뉴스를 만나고 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한동안 무겁다. 우연한 사고로,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으로,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음 속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소설은 이렇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죽음의 풍경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일상생활 가까이 있는 죽음을 다루는 소설들은 많지만, 이 소설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죽음의 뉴스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기이하면서도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소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뉴스에서 보고 들은 것만을 바탕으로 죽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을 찾아다니며 애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을 찾아다니는 한 사람

  이 소설은 세 명의 시선으로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찾아다니는 주간지 기자 마키노 고타로, 애도하는 사람의 어머니이자 이제 죽음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천천히 삶을 정리하는 사카쓰키 준코, 남편을 죽인 죄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나기 유키요. 이 세 명의 시선에서 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자는 우연히 그를 만나고, 기사거리가 되지 않을까 염탐하며 어머니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에 둔 채 아들을 기다리고, 자신이 바로 죽음의 목격자이자 가해자가 된 여자는 애도하는 사람을 우연하게 만나 여행에 동참한다.

  이들 세 명의 공통점은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고타로에게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아버지가 있고, 준코는 자기 자신이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유키요는 교도소에서 죄값을 치르고 나왔지만 죽은 남편의 혼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사람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외면하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사람은 죽음 속에서 자신의 생의 의미를 묻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있을 때,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의 애도 여행은 계속된다.

  애도하는 사람이 이렇게 자신과는 상관없는 죽음을 찾아 애도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자신에게 다가왔던 죽음의 풍경들 때문이었다. 때때로 죽음은 남은 자들의 가슴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에게 연이어 다가온,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그를 삶에서 자꾸만 밀어냈다. 그가 극단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바로 애도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처음에 단순하게 떠났던 여행이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한 틀을 잡아갔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의 여행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가 어떤 일로 감사를 표했는지를 물으며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함으로 죽은 이를 기억하려 한다. 그에게 애도는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특별한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행위다. 그 기억의 행위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시 살아난다.

소설 밖에서도 계속된 애도의 여행

  소설을 읽는 내내, 죽음을 찾아다니며 시즈토와 함께 애도하는 여행을 따라나선 기분이 들었 다. 어이없는 죽음과 서글픈 죽음, 안타까운 죽음, 참혹한 죽음들을 오가며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 죽음들 속에서 나에게 다가왔던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들이 그대로 스며들었던 탓에 이 소설을 읽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감정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읽는 속도가 더디지는 않았다. 꽤나 두꺼운 분량인데도 한 번 읽으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 속에 흠뻑 빠져들면서, 이 책을 읽는 일은 '죽음으로 각인된 슬픔의 기억에 대한 일종의 제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죽음의 풍경들 속에서 나는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죽음을 떠올렸고, 애도하는 사람과 함께 부지런히 내 기억 속으로 애도의 여행을 떠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냥 빨리 잊기 위해서, 남겨진 자로서 어쩔 수 없이 또 살아가기 위하여 내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쑤셔넣었던 슬픔이 다시 솟아올랐다. 나는 그렇게 내 밑바닥에 잠겨있었던 모든 죽음들을 다시 애도했다.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그런 작업이 진행되었기에 이 소설을 읽는 일이 두 배로 힘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토록 눈부신 삶의 이야기

  힘이 들긴 했지만 오직 소설을 읽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눈부신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오래도록 진한 여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소설에는 그렇게 상징적인 장면들이 몇 있다. 유키요가 죽은 남편의 혼령에서 자유로워지는 장면이나 준코가 죽어가는 순간 준코의 딸이 아이를 낳는 장면 같은. 그러한 상징적인 장면에서 죽음 속에 들어있는 삶을 만나게 된다. 시즈토가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애도의 여행 덕분이었다. 결국 수많은 죽음의 풍경들 덕분에 그는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애도의 여행을 계속 함으로써 죽음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죽음 속에 들어있는 삶이, 삶의 이야기가 너무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삶은 죽음을 통해서만 그 눈부신 의미를 얻는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안타까운 죽음이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책을 읽으며 애잔해졌던 마음에 또 다시 먹먹한 슬픔이 밀려든다. 소설의 짙은 여운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이번에는 죽은 이보다 죽음 앞에 오열하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더 흔들었다.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고 죽은 이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디선가, 죽은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때 완전히 죽은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은 이들이 죽은 이를 영원히 가슴 속에 품어둘 때, 그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저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특별함을 영원히 기억하는 일. 그렇게 할 때,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덜 힘겨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이렇게 우리가 우리 곁에 다가온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나갈지에 대해 아프도록 묵직하게 들려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내 가슴 속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은 한 사람이 새겨진다. 죽음의 여행 속에서 묵묵히 삶이라는 여행을 계속하는 사람, 시즈토. 이 인상적인 캐릭터와 함께 이 소설을 읽었던, 마치 힘든 여행을 떠난 것 같았던 시간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삶과 죽음을 다루는 소설들을 많이 만나겠지만 이토록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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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예뻐서, 혹은 줄거리가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정작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하면 난감하다. 그럴 때,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리뷰를 읽고 사면, 거의 들어맞는다. 보고 또 보고 해도 늘 좋아하는 그림책, 그런 그림책들을 골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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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 사계절 / 2002년 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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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똥' 이야기.
응가하자, 끙끙 (보드북)
최민오 지음 / 보림 / 2004년 8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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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하자, 끙끙. 계속 반복되는 구조 역시 아이들이 좋아라 한다.
누구 발일까?- 세계의 신발
정해영 글.그림 / 논장 / 2009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1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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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누구 발일까? 라고 질문이 계속되어 좋아라 한다. 의성어, 의태어를 따라하며 읽는 것도 무지 좋아한다.
구름빵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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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인기야 말해 무엇하랴.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림책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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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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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영화가 있다. 영화가 다 끝난 뒤에도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도록 만드는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다시 광고가 시작되는데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해 어정쩡하게 일어서며 아쉬움을 달래야만 하는 영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노려보는 극장 직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쫓겨나듯 극장 안을 나와야 하는 기분.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은데, 조금 더 이야기 속에 파묻혀 있고 싶은데 이야기는 끝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분. 그런 아쉬운 기분을 달래며 마지막 책장을 덮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만약 영화로 태어났다면, 나는 절대 보지 않았을 종류의 영화였을 것이다. 배경과 등장인물이 도무지 내가 영화 속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머니까. ‘가족’ 관계의 지긋지긋함을 영화 속에서까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 ‘가족’ 이야기다. 가족의 따뜻함을 확인하는 소설과는 거리가 멀고, ‘가족’이라는 거 아예 없었다면 좋겠다고 한 번쯤 생각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읽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것을 권한다. 그래도 무슨 이야기든 재미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박민규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처음으로 찍은 영화 한 편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후, 영화계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영화감독인 ‘나’의 시선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1인칭 시점이다 보니, 은근 슬쩍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묻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영화계에 몸담았던 작가의 경험이 묻어나오는 부분들이 많다. 이 소설 속에는 수많은 영화가 소품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삶도. (영화는 자신에게 어쩔 수 없는 첫사랑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런 첫사랑에게 바치는 애틋한 편지는 아닐까? 자신을 잘 알아주지 않는데도 자꾸만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 불러만 준다면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람. 작가에게 영화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런 영화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이 소설 속에도 살짝 스며 있는 것만 같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사실상 끝나버린, 영화감독인 ‘나’외에도 이 소설에는 정말 막나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폭력과 강간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노년이 거의 다 되어 엄마 집에 얹혀사는 남자. 바람나서 집에서 쫓겨나와 딸과 함께 엄마 집으로 오게 된 여자. 한 편의 영화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알코올에 의존하는 남자(바로 영화감독인 ‘나’). 모두 늙어서 갈 데라곤 없어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오게 되는 상황이라니. 정말 기막히고 서글픈 상황 아닌가. 어렸을 때처럼 다시 이들이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과거의 비밀들이 하나 둘 밝혀진다.


  작가 자신이 과연 이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일까 추궁하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막장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 이 소설 속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생각해보니, 이 소설에는 불륜과 이혼, 폭력과 범죄 조직, 연쇄 살인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다 들어 있다. 하지만 독자로서 ‘아니 정말, 이 막장드라마 같은 소설 계속 읽어야 하나?’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정말 ‘에잇, 이거 뭐야?’했을 이야기들이 능청맞은 입담과 재치 있는 유머에 힘입어 맛깔스러운 이야기로 변신한 덕분이다. 과거의 저편으로 영원히 묻어두면 좋을, 가족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자꾸만 보는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하나같이 서글프고 찌질하고 궁색한 인생들 속에서 작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소설가, 헤밍웨이의 삶을 슬쩍 집어넣는다. 영화감독인 ‘나’는 우연히 빌라 앞 쓰레기 수거함에서 누가 버리고 간 헤밍웨이 전집을 가져와 읽는다. 헤밍웨이는 비극적인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결국 권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 짓는다. 달콤한 날들도 있었고, 행복한 시간도 있었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결국 삶의 고통 앞에 무릎 꿇고 만다. 그런 비극적인 삶이 궁색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인생들 속에 겹쳐진다. 이 수상한 가족들에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감독인 ‘나’는 그 행복했던 시간을 자신이 첫 영화를 만들었을 무렵이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늘 그렇다. 행복한 순간은 늘 너무 짧고, 대부분 고통스럽고 슬프고 찌질하다. 우리 모두를 만든 신이 만약 영화감독이라면, 정말 대부분의 영화를 형편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 또한 “사는 게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생들이다. 헤밍웨이처럼 결국 그런 삶을 끝낼 용기가 없을 뿐.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p.45


  작가의 말대로, 사는 일이란 정말 시시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찍는 일이다. 매번 함정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고통스럽게 한숨짓는 일들의 연속.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때때로 감정이입이 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늘 “사는 게 왜 이렇지?”하는 자조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돈이 없어 조카를 협박해 용돈을 얻어내야만 하는, 다소 굴욕적인 삶. 그런 게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함정을 피해 다니다가 용케 <쇼생크 탈출>보다 더 짜릿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찍기도 하는 것이 삶이기도 한 모양이다. (이건 읽어보면 알게 된다)


 내게는 이 작품이 <고래>에 이어 읽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고래>라는 작품이 “와,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하는 감탄을 하게 했다면, 이 작품은 “와, 이 작가 소설 참 재미있게 쓰네!”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 할까. <고래>에서 흡인력 강한 이야기의 재미를 느꼈다면, 이 소설에서는 거대한 이야기에서 느끼는 감탄이 아닌 소소한 장치와 설정에서 느껴지는 웃음이 매력적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정말 웃음이 꽝 터지기도 했고. 후기에 소설가 박민규와의 술자리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설을 읽다가 정말 박민규의 소설처럼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이 작가가 소설가 박민규와 친하다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닮는 거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아무튼,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보기는 박민규의 소설을 읽고 나서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 영화보다는 소설에 전념하겠다는 작가의 인터뷰가 자꾸 떠올랐다. 작가 후기에 이런 말까지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그들이 나의 다음 소설을 또, 기꺼이 기다려줄 거라고 믿는다.”

  동료 소설가들에게 말하는 그의 이 다짐에는 약간의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자꾸만 작가의 인터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인터뷰를 보면서 이 작가가 이제부터 정말 소설을 열심히 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작가가 자신이 정말 잘하는 것에 파고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는 건 아무래도 즐거운 일이니까. 그리고 꼭 읽어야 할 작가의 리스트가 늘어나는 것도 이래저래 즐거운 일이니까.)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고래>를 읽고 <고령화 가족>을 읽은, 이제 막 ‘천명관’이라는 작가에 빠져들기 시작한 독자 한 명도 당신의 소설을 기꺼이 기다려줄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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