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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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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기 전, 친구랑 우연히 얘기를 나누다가 올해는 누가 받을 것인가 이야기가 나왔다. 박민규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의 당선을 점쳤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직 박민규의 작품이 받기엔 이르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그렇게 얘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규가 올해 수상자라는 뉴스가 나왔다. 마치 거짓말처럼. 나는 그 뉴스를 보자마자, 좀(아니, 많이!) 놀랐다. 그리고 내 예상이 빗나가서 좀 화가 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읽은 박민규의 작품들을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읽지 않았다. 언젠가 단편 하나를 읽고 깔깔깔 웃었던 게 다인가? 그게 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다. 수상 작품집이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주문했고 열심히 읽었던 건. 

 
아,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상작과 자선 대표작,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을 읽었는데 그의 작품보다 “자서전은 얼어 죽을”이라는 제목을 단 문학적 자서전이 더 기억에 남는 거다.(이렇게 파격적인 제목을 단 문학적 자서전이 예전에 있었던가? 없다. 일부러 예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뒤적여 보기까지 했다.) 아무튼 “죽음과 탄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파격적 메타포로 압축”했다는 평을 받은 이번 수상작, <아침의 문>보다도 나는 박민규라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밤하늘의 별이 유독 잘 보인다는 강원도의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단칸방”에서 휠체어에 앉아 보조용 테이블을 끼우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어 글을 쓰는 소설가가 더 기억에 남더란 거다. “소재의 과격성과 어울리는 파격적인 서사기법이 돋보이는 수작”, “‘문’이라는 은유를 통해 되살린 ‘희망’의 연금술” 등의 찬사를 받은 <아침의 문>보다도, “적어도 문학적 자서전이란, 책을 백 권 정도는 쓴 인간들이나 논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자서전은 얼어 죽을‘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는 한 소설가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란 말이다. (작품보다 작가의 개인 생활에 더 관심을 가지는 모양새라니......) 

  아무튼 다시 그의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서......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자살을 시도하다 혼자 살아남은 사람,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여 상가 옥상에서 아이를 낳는 여자. 다시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는 건너편 옥상에서 이제 막 삶이라는 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를 발견한다. <아침의 문>은 뭐 그런 이야기다. 과격한 소재에 어울리는 파격적인 서사기법이라고 하는데, 글쎄. 그의 자서전이 더 파격적으로 다가오는 내게 소설은 그다지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선 대표작으로 실려 있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가 좀 더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작품 다 박민규식의 유머가 있었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역시 ‘박민규라는 작가는 참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작가구나.’하는 생각을 확실하게 굳혀 주었다고나 할까.

  나는 어떤 문학상이든 심사평과 수상 소감을 꼼꼼하게 읽는 편인데, 이번 수상 소감은 아무래도 내가 읽은 수상 소감 중 몇 번째 안에 기억될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솔직한 심정과 느낌을 간결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박민규는 “그저 한 편의 단편을 썼을 뿐”이라며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쓰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의 수상 소감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문학적 자서전을 읽고 나는 이 작가에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앉아 “인간은 언제나 장애로 가득 찬 존재임을” 느끼며 글을 쓰며 강원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지구에서 글을 쓰는 인간이야.”라고 속삭이기도 하는 작가.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써야 고통스럽지? 그런 고민을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소설은 그냥 쓰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순전히 글을 쓰고 읽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양보하고 손해를 보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작가. 이런 작가가 더 열심히 쓰겠다고 하니,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당신의 작품,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그동안 단편 하나라니, 너무했지.)


  (앗, 그러고 보니 같이 실려 있는 작품들(우수상 수상작)에 대한 얘기를 너무 안했다. 도저히 읽을 엄두가 안 나는 몇몇 작품을 빼고, 모두 읽긴 했다. 그중에서 김애란의 작품은 애잔했고, 편혜영의 작품은 독특했다. 윤성희의 작품은 발랄했다. 그러면서 좀 쓸쓸하기도 했고. 심사평을 읽으면서 느낀 건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전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작품이 수상 후보작(우수상 수상작)으로 실려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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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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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를 알고 싶었던 나의 욕망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너무 모르는 게 많았고,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로 가 닿지 못했던 마음들이 아직도 어느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의 내부를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아니, 어쩌면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쪽으로는 전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파른 숨을 내쉬며 소설 속을 걸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손에 땀이 조금 묻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내내 조여 오는 급박함까진 아니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스며드는 불안을 어찌할 수 없었다. 감추어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나도 모르게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며 책을 덮어버리고픈 충동을 억누르기도 했다. 물론 그런 충동보다 책장을 계속 넘기고 싶은 욕구가 더 강렬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흡입력이 강했다.

  소설의 도입부터 만만치 않았다. 강물 위로 둥실 떠다니다 발견되는 남자의 사체는 시작부터 소설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환기시켜 준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가 이 남자를 죽게 만든 걸까, 아니 이 남자는 왜 죽은 걸까, 그리고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남자에 대한 궁금증은 금세 어느 수상한 가족에 대한 궁금증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남자 사체가 주었던 찜찜한 공포가 이들 가족 이야기 속에서 슬며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이들 가족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껍질을 벗는 순간, 비릿한 시체의 냄새가 흩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마치 어떤 의혹이 숨어 있는 죽음과도 비슷한 사연을 하나씩 품고 있다. 무역업을 하지만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 김상호. 그는 자신의 아이가 실종되었는데도 경찰서에 감히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탐정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아이가 사라진 날, 아내 진옥영은 친정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남자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아들 혜성은 여자 친구에게 배다른 동생, 유지가 사라진 날의 알리바이를 부탁한다. 은성은 유지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자신의 주위에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 뜨끔해한다.


  이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밀로 가득한 한 사람의 온전한 내부를 가족이라 하더라도 알기 힘들다. 마치 신원을 알 수 없는 사체처럼. 가족 사이에도 문을 걸어 잠그고, 비밀번호에 이중 잠금 장치까지 한 것처럼 꽁꽁 숨어 있다. 아이가 실종되기 전까지 그랬다. 아이가 실종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까지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이 파헤쳐지기 시작한다. 탐정의 시선을 따라 비밀의 문을 걸어 들어간다. 수상한 가족을 몰래 엿보면서, 그 속에 스며 있는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해냈는지도 모른다. 음침하게 감추어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그 관계의 어두움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마치 잘 다듬은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것만 같다. 실종된 아이의 컴퓨터에 걸려 있는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 엄마는 당황해한다. 아이의 배다른 언니는 아이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던 전력이 있다. 아버지에게 꼬박꼬박 등록금을 받았던 아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누나는 놀란다. 그리고 그저 무역업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아버지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관계로 묶여 있지만 사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과도 같은 관계로 이루어진 사람들. 어쩌면 가족이라는 관계로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를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문득 그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꺼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다.


  어쩌면 작가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빛깔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들 혜성은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아빠, 새엄마, 누나 대신 그들의 이름, 김상호, 진옥영, 김은성이라고 저장했다. 이 작은 에피소드가 크게 와 닿았던 건, 이 소설에서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여섯 명의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중 다섯 명은 우연하게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혀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엔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지는 한 남자가 삶의 위기에 맞닥뜨려지고, 전형적인 강남 귀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평생 한 남자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해 힘들어하고, 좋은 대학을 다니며 안락한 가정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 남자는 밤마다 어딘가를 방황하며 불을 지르고, 바이올린 영재로 주목받는 아이는 온라인상에서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한 남자는 여자의 주위를 맴돌며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작가의 말에는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 뿐.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라는 쉼보르스카 여사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어쩌면 쓸 데 없는 궁금증일 수도 있겠다 싶다. 불필요한 문장들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었기에 이야기의 여운은 더 진하게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과감하게 생략한 이야기 속에서, ‘너’라는 세계, 그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좀 암울하기도 했고 쓸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설이 주는 진한 쓸쓸함에 푹 빠져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수많은 타인들을 영원히 알지 못한 채, 그 바깥에 서서 문을 똑똑 두드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했을 뿐이다.


  어쩌면, 작가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작가가 내밀고 싶었던 이야기의 자락을 나는 붙잡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붙잡고 있었던 몇 시간 동안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책 속을 거닐며 느꼈던 어떤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누군가를,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먹먹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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