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유토피아 -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키워드 한국문화 5
서신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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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도원도>에서 시작된 우리 조상들의 삶과 꿈 이야기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알아낸, 우리 조상들이 꿈에 그리던 세계와 그 세계를 실제로 만들려고 노력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보았던 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하여 탄생한 <몽유도원도>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옛 선조들의 문집이나 각종 설화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이상세계를 찾아 헤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넘나든다. 이 책의 소개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흔적들을 통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꿈을 엿보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세계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현실의 간절한 희망을 꿈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꿈에 그리던 공간을 꿈속에서 만났고 그것을 안견으로 하여금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몽유도원도>는 그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세계를 잘 드러내준다.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그런 세계를 찾았지만, 글쓴이는 우리 선조들의 문집이나 설화를 통해 이상세계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많았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명에 이상향을 뜻하는 단어를 붙여 자신의 마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드러낸 것에서부터 이상세계를 찾으러 떠났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는 일화들까지. 그리고 실제로 지금의 경기도 가평에 자신들이 꿈꾼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지금 문헌으로 전해져 오지는 않지만 그런 비슷한 사례가 어쩌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세계를 꿈꾸었을까
  그럼 우리 조상들이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상적인 세계라고 하면,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먹고 놀기 좋은 곳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꿈꾸었던 이상세계의 모습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글쓴이는 다양한 이상세계의 유형 가운데 우리 조상들이 주로 꿈꾸었던 이상세계의 유형인 무릉도원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우리 선조들이 이상세계로 그린 곳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늘 근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게을러짐으로써 물질적인 황폐함을 야기하고, 또 그것이 정신적인 황폐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꿈꾸고 그렸던 이상세계가 똑같은 모습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상향의 모습이 변했다. 고을 아전의 쌀 내놓으라는 괴롭힘만 없다면 어디든 무릉도원이라고 읊은 시에서처럼, 열심히 일해도 관의 횡포 때문에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는 관의 수탈과 학정이 없는 곳을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한편, 유난히 전쟁이 많았던 조선 중기에는 목숨의 위협이 없는 곳을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상향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토록 이상향을 꿈꾸고 그곳을 찾기를 갈망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습이 소박한 희망마저 용인하지 않는 사회임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다면, 이상세계를 꿈꿀 이유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소박한 모습으로 여겨지는 이상세계를 절실하게 그리워했던 우리 조상들의 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편으로는 서글프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 조상들이 꿈꾸었던 세계를 엿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를 엿보는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책장을 덮기 전에야 비로소 그들이 꾸었던 꿈을 통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더듬어 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전쟁이 일어나 목숨마저 위협받기도 했고, 열심히 일해도 관에서 모두 빼앗아 가버려 절망적이기도 했을 어떤 삶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고 싶은데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으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어떤 삶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래서 깊은 산 속, 누구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어떤 곳에 대한 열망이 그토록 강하게 남아 지금까지 여러 흔적으로 남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꾼 데에서 나아가
  우리 조상들이 추구하고 세우고 싶었던 이상향을 여러 문헌과 자료들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글쓴이는 “꿈꾼 데에서 나아가”라는 제목의 장에서, “꿈꾸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며 우리 조상들처럼 이상세계를 꿈꾸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며 글을 끝맺는다. 때로는 꿈을 꾸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이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횡포들이 있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꿈조차 꾸지 않으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랄 수 있을까?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일은 그런 세계로 가기 위한 첫걸음일 터이다. 이상향을 찾고 그런 이상세계를 실제로 건설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처럼, 꿈꾼 데에서 더 나아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림 한 장에서 문화를 엿보다
  <조선인의 유토피아>는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키워드 한국문화는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한국을 찾자”는 의도로 기획된 시리즈다. 책을 읽고 나서 기획의도를 들여다보니,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발을 들여놓아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문화는 무턱대고 조금 지루하고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관에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이 시리즈는 매우 유용하고 값진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나처럼 우리 것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너무 막연해서 한 발 물러 서 있던 독자에게 아주 쉬운 길을 안내해주는 책이었다. 한 장의 그림을 따라서, 남겨진 여러 가지 글을 따라서 우리 조상들의 삶과 꿈을 엿보고 나니 우리문화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쉽게 지워버릴 수 있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바라본 느낌이랄까.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아주 쉬운 곳에서 조금씩 조금씩 넓혀나간 느낌이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듯이 쉽게 쓰여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기획의도에 충실한 원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 헤매었을 글쓴이의 노력들이 책의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속의 그림이 흑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날개를 들여다보니, 5권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 이 시리즈가 출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에 충실한 책들, 그래서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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