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스콜라 어린이문고 29
원명희 지음, 서영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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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상처받고, 상처 주게 되는 날.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해서 내가 아파지는 날. 일상에서 생기는 작고 불편한 감정들이 내 마음에 얼룩을 남긴다. 내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 작은 얼룩은 착실하게 크고 진해져서 어떻게 닦아야 할지 난감해지는 순간에 이르고는 한다. 옷에 남은 얼룩이라면 세제로 지우고 깨끗하게 세탁하면 그만일 테지만, 마음의 얼룩을 지울 방법이란 도통 떠올리기 어렵다.

 

마냥 천진난만한 세계에서 살 것 같은 어린이들에게도 각자의 얼룩이 있다. 어른들과 똑같이 다채로운 감정을 가진 한 명의 주체인 아이들의 내면에는 분노와 미움, 모나고 날카로운 부분이 존재한다. 자신의 모난 부분이 타인에게 향하지 않도록 잘 숨기기보다도 내버려 두는 편이 쉽기 때문에, 어른들도 어린이들도 대체로 서로를 조금씩 상처로 얼룩지게 하면서 산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마음의 얼룩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그 얼룩을 닦아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작은 할아버지형태가 그런 인물들이다.

 

상가에서 행복 세탁소를 운영하는 작은 할아버지는 옷의 세탁해 줄 뿐 아니라 대화와 위로를 통해 손님들이 가진 마음의 얼룩을 들여다본다. 집에서는 집착이 심한 엄마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며 마음에 얼룩이 잔뜩 물든 주인공 하늘이가 작은 할아버지를 의지하는 어쩌면 당연하다.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실감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하늘이는 작은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자신의 아픔을 알아보고 위로가 되어주려는 형태에게 쉽사리 곁을 내주지 못한다. 홀로 어려움을 견디는 사이 짙어져만 가던 하늘이의 얼룩은 끝내 정체 모를 악취를 풍기는 지경에 이른다.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는 도저히 지울 수 없을 것만 같은 하늘이의 깊은 얼룩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늘이의 아픔을 말끔히 세탁해줄 것만 같던 행복 세탁소라는 판타지적 장소는 뜻 밖에도,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은 마음의 얼룩이 마법으로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주스를 쏟았을 때는 소금물, 케첩 얼룩은 식초로. 얼룩이 생긴 이유에 따라 세탁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내 마음의 얼룩이 어떻게 해야 빠질 수 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 ‘행복 세탁소는 하늘이가 내면의 갈등과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뿐 아이들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지난한 갈등과 굴곡을 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늘이는 겨우겨우 자신의 얼룩을 닦는다. 자신의 마음과 마주보고도 쉽게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하늘이의 모습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실제 우리도, 어린이도 더 정의롭고 불편한 선택지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현실적이다.

 

어린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상상하고 귀여워하는 건 간단하지만, 모난 부분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가장 불편한 모습을 재현해 내는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는 말한다. 스스로 마음의 얼룩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아. 그 어려움을 넘어서 얼룩을 세탁해 보려는 너희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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