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좀 하는 이유나 노란 잠수함 5
류재향 지음, 이덕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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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건 동화에서 가장 다루기 난처한 소재다.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의 따뜻한 부분을 배우기를 바라는 동화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욕을 하지 말자라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지만, 그 메시지를 강조하면 너무나 교훈적인 책이 되어버려서 어린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렇다고 욕하고 싶은 어린이의 욕망에만 집중하면 독자가 욕이 주는 자극에만 집중하게 돼서 이야기의 서사와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아동의 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난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들의 욕설에 대해 들여다봐야 할 지점을 어른들이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원인을 찾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욕이라는 언어의 문제성이 아닌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욕 좀 하는 이유나네가 욕 좀 하는 이유나, 들어보자라고 중의적으로 읽히는 제목처럼 책 속의 어린이 인물들이 욕을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충실하다.

 

너 욕 좀 하지? 나한테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8p, 소미의 대사)

 

욕 좀 하는 이유나는 욕을 하고 싶어 하는 모범생 소미가 주인공 유나에게 욕을 가르쳐달라는 이상한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주인공 유나도 독자도 궁금해진다. 너는 왜 욕을 하고 싶은데?

소미가 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임태구라는 전학생 때문이다.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임태구는 소미를 보면 영어로 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한다. 그래서 소미도 임태구의 욕보다 더 힘이 세 언어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의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임태구에게도 사정이 있다. 전학 온 직후, 아이들 사이에서 겉돌던 임태구는 영어로 된 욕을 통해 관심을 받는다. 이후 자연스럽게 임태구에게 욕이란 자신의 존재를 상대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매사 욕이 입은 유별난 아이로 보이는 주인공 유나도 주변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욕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어린이들은 연약한 자신을 보호하고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 욕설이기 때문에 욕을 한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가르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오빠, 할머니처럼 가까운 연장자다. 어린이 세계의 연장자들은 욕설을 통해 자신은 쉽게 힘을 얻으면서 정작 아이들에게는 욕을 하지 말라는 모순적인 요구를 한다. 심지어 욕설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하지만, 어린이들은 안다. 욕을 듣고 상처 입은 친구의 표정이 계속 떠오르니까, 욕을 하는 내가 싫어지니까. 우리에게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동화 속 어린이들은 전설의 검을 찾아 모험을 떠나듯이 욕설보다 힘이 강하고 자신을 보호할 새로운 수단을 찾아 나간다. 그 수단이란 유나가 국어사전을 통해 찾아낸 새로운 언어와 언어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끝내 찾아낸 전설의 검은 말이 아닌 관계이다.

소미는 유나와의 유대감 덕분에 더 이상 임태구의 난폭한 말이 버겁게 여겨지지 않는다. 유나도 소미와 우정을 쌓는 사이에 욕설의 쓸모를 잃게 된다. 임태구 또한 유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할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된다.

 

소미가 임태구의 욕보다 더 나은 욕을 찾고. 임태구의 영어 욕이 또래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욕이 가진 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서로가 비슷한 비속어를 한다면 언어가 가진 힘 또한 비슷해져 우위를 점하기 힘들어진다. 욕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와 나의 시간이 쌓이고 친밀해질수록 단단해지는 관계의 힘은 한계 없이 강해진다.

 

떠올려 보면, 어린 시절. 나에게도 소미와 유나 같은 마음이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애한테 당하고만 있고 싶지 않아서 험한 말을 연습했지만, 입에 붙지 않아 속상했던 때가. 또래들에게 지지 않고 싶어서 더 강하고 날카로운 욕설을 찾던 때가. 그토록 간절하게 힘이 센 언어를 찾아다녔던 나는 어느 순간 욕하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굳이 날카로운 말로 울타리를 치지 않아도, 나를 보호해줄 믿음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가장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어려움을 위로받고 욕이 아닌 다정함으로 서로를 보호하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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