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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뉴엘 - 마지막 숨결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루이스 부뉴엘 지음, 이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평점 :
모든 자서전은 둘 중의 하나이다. 1)자기성찰을 하거나 2)자신을 선택적으로 은폐하고 과장한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니 전자이다. 치부를 낱낱이 드러낼수록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과,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는 건 연결이 된다. 하지만 재소자가 쓴 수기를 읽어보면 구구절절한 글 속에서 자신의 범행은 축소되어 있다. 변명을 하며 범행을 합리화하는 게 보이고,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거나 자기야말로 피해자라는 개소리를 씨불인다. 재소자가 쓴 수기는 후자이다.
루이스 부뉴엘의 <마지막 숨결>은 어떤가. 이 자서전은 후자인데 허풍을 떠는 게 보인다. 자기가 뭘 하려고 했다가 안 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자기 작품에 안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돌을 던지려다 말았다거나 어떤 종교 행사를 엎어버리려고 했다가 말았다는 식이다. 스페인 내전을 서술하면서 자기가 마치 큰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말하는 것도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풍같았고, 모든 이야기에서 자기가 중심인 것도 재밌었다. 부뉴엘은 자신을 선택적으로 은폐-과장했지만 재소자의 은폐-과장과 다르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가만히 웃음이 나왔다.
자기 성찰을 하거나 자신을 과장하기에 자서전은 개인적이지만 <마지막 숨결>이라는 자서전은 사회적이기도 하다. 가톨릭 종교가 만든, 당대 사회의 성적 금기에 대한 반발이 자서전 바닥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행위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때때로 그 안에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자리잡는다는 것을 루이스 부뉴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자서전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대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부뉴엘이 초현실주의 그룹과 어울린 것이나 영화를 만든 것도 시대의 증상을 포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성적 금기를 해체한 영화를 만든 사람의 고백에는 현실을 떠나려고 애쓴 사람이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려고 애쓴 사람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