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멜랑콜리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장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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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토리노 기차역에 내리자 황금빛 세상이었다. 하지만 눈이 부시지 않았던 것은 빛바랜 황금빛이었기 때문이다. 라는 내용이 긴 논의의 마지막에 나온다. 차라리 이 대목을 논의의 시작으로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소설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문학적인 수사같은 이 내용은 저자를 평생 토리노에 대해 연구하게 만든 운명같은 예언이기도 하다. 도시를 감싼 빛바랜 황금빛의 정체는 멜랑꼴리이다.


토리노를 대표했던 기업 피아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피아트 노동자들의 시작부터 현재까지가 이 논의의 주된 소재인데, 경제적 자유를 향한 피아트의 노력과, 반파시즘을 향한 노동자들의 노력은 부딪치고 협력하며 나아간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던 둘은 열심히 달려갔지만 현재 피아트는 토리노에 없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투쟁하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쓸쓸함과 슬픔이라는 이름의 멜랑꼴리이다.


“시몬 베유가 지적했듯이, 힘과 힘이 부딪치는 투쟁의 본질이 인간을 사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힘에 종속된 영혼은 수동적인 물질로 전락하여, 한편으로 “재앙의 눈먼 원인을 이루는 화재, 홍수, 바람, 사나운 짐승들”이 되거나 다른 한편으로 “겁먹은 동물, 나무, 물, 모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멜랑꼴리는 자신의 사물화, 즉 인간성의 상실을 깨달은 상처 입은 자의 감정으로서, 투쟁하는 인간을 항상 따라다니는 엷지만 길게 드리워진 그림이다. 피아트의 도시, 반파시즘의 도시 토리노가 본질적으로 멜랑꼴리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 p220


한 도시를 응시하는 이 훌륭한 통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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