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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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고래>. 주인공 이춘개를 포함해서 인물들의 특성을 자주 나타내는 말은 ‘알지 못한다’ 이다. 뱃사람이 고래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다며 말하라고 고문하는 사람이 왜 저러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말은 자연은 경이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겠으나 이념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말은 인간이 슬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자에서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이념의 폭력과 연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알지 못할리 없다며 때리고, 알지 못하는 것으로 죄를 묻는다. 알지 못하는데도 오랜 세월 갇혀 있다가 풀려난 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는데, 의문사라고 하는, 알지 못하는 이가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이고, 그 말은 가장 슬픈 말이다...


<영자>. 학원강사들은 수험생끼리 동거가 웬 말이냐고 정신차리라고 일갈하겠지만, 노량진에 있다는, 동거와 스터디를 합성한 기묘한 생활을 전해 들은지 오래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 공무원 시험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단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한테는 생존 본능이 있기 때문인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외로움, 이 길 밖에 없다는 절박함, 공무원의 업무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에서 합격하려는 막막함, 공부를 하면서 돈을 아껴야 하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또는 동거도 해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그 기묘한 단어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김훈도 노량진에서 인간의 생존 본능을 본 것 같다. 김훈은 인간의 생존 본능을 수험생의 동거와 공부에서 더 밀고 나가는데, 수험생에게 밥을 파는 불법 노점상과, 불법 노점상이 철거되는 걸 보면서도 태연하게 밥을 먹는 수험생의 숟가락질에까지 확장한다. 김훈은 후기에서 제도가 사랑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봤다고 썼다.


<영자>의 노량진 풍속 묘사, 노량진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단어는 김훈이 성실한 관찰자라는 걸 증명한다.


<저만치 혼자서>. 수도원에 모인, 임종이 가까운 수녀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신부가 주인공이다. 그곳의 주된 일이란 고해성사를 해주고, 임종에 가까워진 수녀들을 위로하고, 임종을 맞은 수녀에게 장례미사를 하는 것이다. 소설의 신부는 젊은 신부,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신부 둘인데, 젊은 신부가 임종이 가까운 수녀 곁에 있고,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신부는 멀찍이서 젊은 신부를 도와주고 있다. 이 배치가 재밌는데, 젊은 신부는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신학적이고 인간적인 물음을 던지고, 나이 든 신부가 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규정과 규율이라는 선이 있다고 하면 젊은 신부의 혈기 있는 신앙심은 그 선에 가까이 있지만 나이 든 신부는 각자의 사정을 더 우선한다. 각자의 사정은 규율과 규정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원칙을 따르려는 젊은이와 원칙 너머 큰 세상을 보여주려는 숙련자의 구도는 자연스럽다.


소설에서 수녀들과 신부들은 타인의 삶을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온다는 점에서 비춰보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같은 것이 의미심장하다.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동행한다는 것이고, 동행한다는 것은 사랑의 올바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에서 <명태와 고래>, <영자>, <저만치 혼자서>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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