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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책의 내용과 형식에 조금은 적응이 안됐었다. 내용이 일제시대 힘들어하는 조선의 백성들을 주로 해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책의 구성은 그저 평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는 TV도 없었기에 뉴스는 물론이고, 비디오 같은 매체로 그 당시를 녹화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는 오로지 신문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신문 중에서도 가장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알 수 있던 코너가 바로 만문만화였다. 이 책은 그 시대 조선일보에 실렸던 안석영의 만문만화를 예를 들어 그 사회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만문만화를 통해서 우리는 1920~1930년대의 경성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만문만화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소한 장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만문만화는 일본의 만화 만문이라는 것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안석영이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시대상황이 시사만화를 허락하지 않자, 30년대의 도시 풍경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는 만문만화가 발전한 것이다. 만문만화는 1920~1930년대에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의 주된 장르였다. 만문만화는 추상적인 글과 난잡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과 그림을 따로 떼어놓고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과 글을 붙여놓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소비중심의 근대도시 경성과 모던걸, 모던보이의 등장, 시대별 유행, 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관계의 변화, 당대 사람들의 모습과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만문 만화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이 책의 본문은 6장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장인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작가의 시각에서 본 전체적인 경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앞의 다섯 장에서는 경성의 각각의 모습을 주제별로 묶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다섯 개의 장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순과 대립이다. 작가는 그 당시의 경성 전체를 모순과 대립의 한 덩어리로 보고 있다.
당시 경성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식민지 통치는 이미 자리를 잡았고, 서양 자본주의와 근대 문화가 일본을 거쳐 조선에까지 상륙했다. 근대 도시 경성은 화려한 불빛으로 시골뜨기를 유혹했고, 새로운 문명과 소비문화를 즐기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풍요로운 청춘을 노래했다(모던걸, 모던보이는 당시 경성의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빛의 뒷면은 어두웠고 대공황이나 관동대지진 등으로 경제적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체제에 따라 근대 문물을 소개하고 활동사진 등을 통해 서구 근대의 모습을 보고 옷을 입는 거나 하는 행동은 근대화할 수 있었으나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인 사회의 빈곤까지는 근대화될 수 없었다. 덕분에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살던 집은 모던보이, 모던걸들과는 사뭇 다른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전근대와 근대가 섞인 이런 이상한 현상에서 당시 경성의 모순을 볼 수 있다.
근대와 전근대가 함께 존재하는 모순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어있었다. 일본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만든 소비 중심의 근대도시 경성을 살펴보면 경성은 오늘날 강남과 강북이 나뉘어 있는 것처럼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지역 상가에는 근대적 상품과 화려한 건물, 네온사인으로 덮인 근대도시가 형성되었다. 남촌의 화려한 건물들은 모던보이, 모던걸을 유혹했다. 그러나 북촌은 전근대의 잔재가 남아있는 불완전한 근대, 즉 식민지적 근대도시를 형성하게 된다. 경성은 근대와 전근대의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 자체가 이미 모순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강남과 강북을 차별하듯 남촌과 북촌 역시 조금의 차별을 받게 된다.
유행에서도 모순은 드러났다. 앞서 말했듯이 1920~1930년대는 세계적으로 대공황시기였고,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근대적인 유행을 좇아 공황임에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치스러운 행각을 하는 당시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을 볼 수 있다. 모던보이들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사치를 부리고 여자를 꼬시기에 여념이 없었고. 모던걸 또한 남자를 꼬셔서 조금이라도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만문만화에 비춰진 이들은 매우 부정적인 인물이다. 유행은 근대로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실상에 맞지 않는 유행 좇아가기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저자는 비난한다.
결혼과 연애에서도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조혼제도는 자유연애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덕분에 신여성들은 제 2의 처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전근대적 가부장제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가부장제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첫 번째 물음은 왜 교과서는 식민지 시대의 민족 투쟁적 모습만을 비춰줬던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나에게 일제시대는 민족의 한, 눈물이요 험난하고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시대이었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제시대는 우리 민족을 탄압한 식민 당국과 민족주의 열사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이다. 1920~1930년대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일본이 문화통치를 시작했다느니, 미쓰야 협정 같은 것을 했다느니 하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1920~1930년대 경성지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질문을 그들에게 던져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대부분이 대답을 못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는 시대에 따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적혀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그 당시 어땠는지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나는 이 단어를 생각하면 상투가 잘린 채 신음하는 불쌍한 선조,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는 모습, 순사들이 칼을 차고 농민들의 양식을 빼앗아 가는 장면이 생각났었다. 과연 그러한 시대에 모던이란 말이 어울리기나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특히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 주목하고 싶다. 이들은 단순히 패션이나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였다.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지성인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지성인들의 그런 행동은 그 시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현대 사람들은 대부분의 모습도 그 당시의 모던보이나 모던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만한 돈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무분별하게 유행을 좇아 외제상품을 수입하고 착용하고 다닌다. 그 당시를 바라보는 작가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을 비난의 눈길로 쳐다본다. 이런 것은 1920년대에나 있는 발상인가? 나에겐 현대도 이와는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단순히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1920~1930년대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저자는 했던 내용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오히려 암기위주의 교과서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과는 사뭇 다른 옛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참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흥미진진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