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로드, 빛이 그린 풍경 속을 걷다 - 네덜란드-프랑스 김영주의 '길 위의' 여행 3
김영주 글.사진 / 컬처그라퍼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7월의 책으로 인상파 로드를 읽게 되었습니다 :)
이런저런 책이나 수업을 통해 인상파 작가들에 대해서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여행글을 통해 그들의 흔적을 만나게 되니 훨씬 더 가까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어요. 
워낙 유명하고 대중적인 화가들이다 보니 오히려 환상속에만 존재할 것 같고, 
평범한 사람과는다른 세계에 살 것만 같던 그들의 생가나 생전에 오래 머물렀던 장소들을 보니
그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내었던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겨울에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 있어서 더 이입하고 설레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가는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지만 ㅠ_ㅠ...!)
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제가 둘 다 너무 가보고싶은 곳이어서 
사진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제가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에 막 들뜨더라구요.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네덜란드가, 짧지만 기억에 많이 남더라구요.
특히나 반 고흐의 마을이나 생가가 잘 유지되고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나
그림에 나오던 집안의 후손이 옛 마을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들이 참 인상깊었어요.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부분이기도 했구요.
보는 내내 저도 꼭 한번 반 고흐가 어린시절 지내던 마을에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갔다온 오빠가 너무 좋았다고 옆에서 부추겨서 더더욱...)




지금도 프랑스에 있는 튈르리 정원을 소재로 한 마네의 그림!
지금은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공원에 원래는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그림 속의 사람들, 그리고 마네와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속에서 공유하는 느낌은 어떨까. 참 궁금했어요.
인상파 로드를 따라 여행하는 것의 가장 큰 쾌감은 바로 거기서 오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들이 보았던 그때의 그 시선을, 오늘의 내가 공유하는 것.
스페인에 가기 전 저도 꼭 그림과 관련해서 여행계획을 짜볼 생각이에요.ㅎ_ㅎ


사실 화가들과 그림 속의 흔적을 찾아 여행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지 의구심도 들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왠걸.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미와 감동이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화가들과 그림 이야기를 듣는 재미 반, 
그리고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멋진 장소,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가 반으로
다른 여행책들보다 더 다양한 재미가 있었던 책이었어요 :)!
덕분에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술술 읽혔구요.
이 책 덕분에 다음에는 꼭꼭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나라도
여행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답니다.

제가 읽는걸 지켜보다가 책을 들춰보던 오빠는 다 읽으면 자기도 빌려달라고 하더라는...ㅋㅋㅋ
앞으로도 이렇게 재밌고 특색있는 여행책이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글도 사진도 보는 재미가 있었던 책, 인상파로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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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건축
이토 도요 지음, 이정환 옮김, 임태희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도요 이토의 이름을 접한 것은 '현대건축의 흐름'이라는 학교수업에서였다. 수업에선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윈드타워 정도를 다루었는데, 짧게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사실 도요 이토라는 건축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안도 다다오와 비교해서 조금 더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라는 느낌정도? 그래서 처음에 책의 제목인 '내일의 건축'을 보았을 때 도요 이토의 작업세계나 앞으로의 건축물들에 대해 다룬 내용일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일'은 내가 예상했던 뻔한 의미의 '내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책을 어느정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장님과 회견하는 과정에서 시장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노숙자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을 잃을 사람들이 넘쳐나는 지금, 원조 노숙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노숙자들을 보살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사람과 사람이 잠깐 동안이지만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 관계를 이루게 된 것이지요. 또 기름이 떨어지고, 물마저 구할 수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철이 1분만 늦어도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운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통 기술, 건설 기술, 통신 기술 등 전 세계에 일본의 기술이 자랑하는 높은 정밀도는 분명 훌륭한 것이지만 그 정밀도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존재할까요. 이번 지진은 그런 궤변의 허무함을 부각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앙에 가까운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간 이후, 그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받아들인다. 도시 속의 큐브에 갇혀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가 차단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초정밀기계들에 의해 오히려 사람들이 쫓겨살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기회. 마치 40일간의 대홍수 이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회를 얻은 노아처럼 말이다. 그리고 건축을 통해 이를 돕기 위해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위 사진처럼 쓰나미에 쓰러진 나무를 이용해 집을 만들기도 하고, 주거공간 중앙에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사람들의 교류를 유도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책을 읽던 중간에 모두의 집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얻고싶어서 구글 검색창에 'everyone's house' 'house of everyone'등등으로 찾아보았는데, 관련된 이미지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보았더니 영문명은 'home for all'이었다. 건축의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를 강조했던 이토도요에겐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House 라는 단어가 아닌 Home을 선택했다는 점이 내게는 참 인상깊었다. 헌 집이 쓰러졌으니 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삶의 공동체 의식까지도 건축을 통해 이뤄내려고 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 건축관 전체를 이 '모두의 집' 프로젝트로 꾸며,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기능은 인간의 다채롭고 복합적인 행동을 단순하게 구분해 추상화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기능에 하나의 공간을 대응시키고 만다. "

책에서 그는 계속해서 근대와 기능, 그리고 이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기능' 그리고 이를 위시한 모더니즘 건축은 어느 순간 사람의 생활반경을 통제하고 구속한다. 또 어떤 순간에는 건축물이 단순히 건축가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디자인 되기도 한다. 쓰나미 피해주민들을 위한 가설주택은 대량생산된 큐브형태로 그저 먹고 잠자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공간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대량생산될 수 있는가, 여부가 가설주택의 가치판단 기준이다. 여기서 그는 '사람을 위한 건축'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교류하며 서로를 치유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소프트웨어까지 고려하는 건축을 시도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한편으로는 뻔해보일 수 있는 이 명제는 어느새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이 되었다. 



이 책에서 도요 이토는 위 사진의 센다이 미디어 테크처럼 기술적으로 뛰어나거나 미래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그 어떤 모습보다도 멋져보였다. 나무로 지은 수수한 건축물들을 전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 대표작을 통해서만 만났던 '도요 이토'가 아니라, 진지한 고민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는 건축가 '도요 이토'를,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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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디자이너 훔쳐보기 - 디자이너 50인의 어제와 오늘
프랭크 필리핀 지음, 김현경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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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월의 리뷰도서는 ‘디자이너, 디자이너 훔쳐보기’!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련된 책에 관심이 많았고 받기 전부터 그 제목과 구성 때문에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배송이 온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책이었다. 이쁜 디자인과 묵직한 두께에 알찬 내용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 디자이너 훔쳐보기’는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50인의 작업과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이다. 




책은 도입부부터 굉장히 흥미로운데, 좋아하는 음식, 기상시간 등의 항목을 50명의 디자이너에게 질문해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놓았다. 취향이라는 것이 어쨌든 일정부분 그 사람을 대변해주기에, 다양한 디자이너 들의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등을 살펴보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특히 기상시간 부분이 재밌었는데,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학창시절보다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데, 전혀 다르다. 디자이너야 말로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사실 이전까지 여러나라의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소개하거나 인터뷰한 책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자신의 학창시절과 디자이너가 된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는 인터뷰를 가상으로 써놓은 책이라는 점이다. 학창시절의 인터뷰는 모두 왼쪽 페이지에, 지금의 인터뷰는 모두 오른쪽 페이지에 쉽게 구분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그 뒤에는 각각의 시기에 만든 작업물들을 배치해놓았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금과 달라진 점, 같은 점, 그 때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꼭 선배 디자이너가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이렇게 학창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으로 나누어져 있다. 어떤 조언은 크게 바뀌기도 하고, 어떤 조언은 학생때도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디자인 전공생들은 실제로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필드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알기 힘들다. 유명한 디자이너들도 이런 경험을 똑같이 해왔고, 때문에 학창시절의 그들과 지금의 그들이 하는 다른 조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비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은 지금은 유명해진 디자이너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비교함으로서 다른 책들보다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선배들이 주는 조언’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들고,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의 강연을 좋아하는데, 그런 짤막짤막한 강연들을 모아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인터뷰 텍스트 뿐만 아니라 도판도 매우 풍부하다는 점!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학창시절 작업을 어땠을까, 항상 궁금했던 나로서는 과거와 지금의 작업을 나란히 보여주는 레이아웃이 맘에 들었다. 또 그들이 말하는 조언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작업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비교할 수 있어서, 작업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조언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특히 (외국에서 먼저 나온 서적이기에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 디자이너의 다양한 생각과 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국내의 디자이너만을 다룬 책은 많지만 이렇게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책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러 디자이너 선배들에게 꼼꼼한 조언을 듣는 느낌을 준듯한 '디자이너, 디자이너 훔쳐보기'. 페이지수가 많아 꽤 두꺼웠지만, 많은 도판과 흥미로운 텍스트 덕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앞으로도 작업이 잘 안될 때마다, 다른 좋은 디자이너들의 이야기와 작업이 보고싶을 때마다 자주 펼쳐볼 레퍼런스 책으로서, 내 책장에 오래오래 꽂혀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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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시간을 담다 -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글.사진 / 안그라픽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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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에 재학중이니만큼, 사진은 내게 그리 낯선 분야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학년 때 이후로 사진수업을 다시 들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왠만한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는  DSLR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막연하게 사진은 있는 모습을 그대로 찍으면 되니까 더 쉽고, 작가 개개인이 차별화되기도 어려운 분야라고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구본창 작가는 이런 나의 생각을 많이 바꾸어주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가 나를 옆에 앉혀놓고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느낌이 든다. '이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어서 이렇게 진행되고 이렇게 마무리된거야', '이 작업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라고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달까. 작가는 셀프 포트레이트부터 백자사진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지만, 각각의 작업에는 모두 나름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작가의 진한 애정이 담겨져있다.

 

 

 

p.152 “대상의 표면에 사로잡혀 그것만 찍으려 하면 표면적인 아름다움 이상은 표현할 수가 없다. … 사진가라면 찍으려는 대상물에서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 바다를 찍으려 한다면 그 바다는 나에게 특별한 것이고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는 작업을 설명하면서 '사실 이렇게 찍은 건 내가 처음이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의 작품 중 바다나, 탈, 백자를 찍은 것은 사실 이전에도 흔했던 소재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동안 사진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고  '뭔가 예전에 본거랑 비슷한 것 같다', '사진은 다 그게 그거같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내 관점이 결국 작가가 말하는 '대상에 표면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나싶다. 소재의 신선함만으로 작품을 판단하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유독 사진에서 '다름'에 집착했는지, 스스로가 왠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의 '다름'은 작가가 담아낸 의미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인데,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전에 보았던 사진작업들이 왠지 다르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p.185 “내가 찍으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란 있는 듯 없는 듯 너무도 조용히 존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은 것들일 때가 많다. … 주변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따뜻한 눈이 있어야 보이고 읽힌다.”

 

또 특히나 나는 이처럼 작은 사물의 관심을 쏟고 지나쳐가는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의 세심함이 인상 깊었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촉, 즉 '안테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감동과 의미를 찾는 것이 예술가의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구본창 작가의 세심함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할 정도여서, 바쁘게 사느라 기계적인 생활패턴만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새삼 멀리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작가의 세심한 감성은 그의 '콜렉팅'에서 두드러진다. 내가 워낙 방 안에 장식품 하나 안 놓고 사는 건조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누군가 버린 것들,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 또는 아주 오래된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아 그 자체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놓은 그의 모습이 참 멋져보였다. 

 

 

 

 



 

 

 

p.144 “…자신이 추구하거나 보여 주려는 작품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두 세계를 구분하기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타파해 가면서 자기 것을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낫다.”

 

이 책은 창작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작가의 작업을 소개하는 챕터에서는 작가가 '독자'로서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면, 이런 챕터들에서는 '선배'로서 나에게 조언해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상업적인 작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이와 타협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디밴드나 랩퍼가 tv에만 나와도 돈과 타협했다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작업이든 결국 모두 자신의 작업이기에 항상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작가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태생 자체가 상업적이면서도, 동시에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성 발휘가 중요한, 꽤나 모순적인 분야이다. 떄문에 나 또한 아직 학부생이지만 항상 내가 하고싶은 작업과 보편적이고 정석적인 작업형식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작가의 말이 내게 작업자로서의 적절한 태도를 지시해주는 듯 하여 기억에 오래 남았다.

 

또한 채널전환과 에디팅, 그리고 머릿속의 폴더 얘기를 하면서 이 사람은 단순히 감성적으로 예민하고 세심해서 작가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프로로서 제대로 일을 하는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자료를 모아 잘 정리해두고, 일을 진행할 때에는 큰 계획 아래에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는 것. 가장 기본적이고 쉬워보이는 일이지만 실제로 작업을 할 때에는 항상 무시되기 십상인 프로세스이다. (나 또한 그렇다.ㅠㅠ) 60에 가까운 프로작가의 투철한 작업정신과 계획성을 보면서 겨우 학생인 내가 이토록 나태하게 살고 있다는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덮으며, 그 동안 망설이던 dslr 카메라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간직하는 일의 매력을 이제서야 조금 느꼈기 때문이다. 사진이야말로 일상에서 수시로 예술가의 '안테나'를 세우고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감수성과 취향을 키워나가는데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의 즐거움, 그리고 작업자로서의 태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이 책이 참 고마웠다. 시간이 된다면 구본창 작가의 전시회에도 꼭 한번 가서 작품들을 실제로 보고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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