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주판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노만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공자님은 세상물정에 아주 밝은 분으로 장사꾼이든, 농사꾼이든 그 누구라도 만나 가르침을 주신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자는 평등교육 외쳤다.

“가르치는 데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有敎無類)」”

“열 가닥 육포 한 묶음 이상의 작은 예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나는 가르침을 주지 않은 적이 없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시부사와 에이치는 쇼와 시대에 이미 근대화 과정에 필수인 교육의 선진적인 면을 보여준다.

특히 비즈니스맨을 위한 실업교육을 강조했다. 메이지, 쇼와 시대 당시까지도 상인에게 고등교육이 필요 없다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시부사와 에이치는 상업교육에도 온 힘을 기울이며 히토쓰바시대학, 도쿄게이자이대학, 도쿄상과대학, 도쿄고등상업학교·이와쿠라철도학교 등의 창설에 노력했다고 한다.

여성교육의 필요성도 절감해 일본여자대학, 도쿄여학관의 설립에 관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학교 설립에 매진했다.

더더욱 요즘에 유행하는, 주입식 교육을 하지 말라. 학생은 자기주도 학습을 해야한다. 지식교육 뿐만 아니라 품성도덕도 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공자도 그렇게 말했다.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보였을 때 나머지 세 모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여튼 시부사와 에이치는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이자, 일본 현대문명의 창시자인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있어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근대화에 먼저 성공했을 뿐이다.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분발했으면 한다.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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