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충돌하는가 - 21세기 최고의 문화심리학자가 밝히는 갈등과 공존의 해법
헤이즐 로즈 마커스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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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이며, 그런 이름표를 달고 이 지구의 어느 땅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70억이 넘는 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70억이라는 숫자라는 기호로도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이 인간은 매일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행동한다.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내 자신은 알고 있지만, 나의 옆에 있는 다른 인간은 완벽히 알 수가 없다. 당연한 소리라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모두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고, 그 의도와 가치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70억의 인간은 현재 70억 개의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다르기에 같은 점에서 만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생각과 행동이 겹치는 순간 두 인간은 충돌을 하는 것이다. 생각에서 비롯한 행동이 부딪치면 이윽고 자신의 생각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폭력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충돌이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조차 선악과를 둘러싸고 이런 충돌은 있었다. 이런 인간의 충돌은 그 수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그 수만큼 다른 충돌을 일으켰다. 이러한 인간의 충돌에 대해 두 여성 문학심리학자가 말하는 책이 있다. 바로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 이다. 책의 이름부터 왜 충돌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충돌에 대한 갈등과 공존의 해법에 대해 말한다고 적어놓았으나, 나로서는 믿지 못할 말이다.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충돌은 이어져 왔고, 전쟁과 개혁을 계속 해왔다. 그런 억 만 겹의 시간의 충돌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난 책을 한 줄로 쌓인 책의 탑 제일 위에 두고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자료를 찾으러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가 그 책과 눈이 맞았다. “뭐 못 읽어볼 정도는 아니겠지.” 나는 자료와 함께 책을 가지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일을 끝내고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목록은 총 열 개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인간들의 충돌을 다룬 항목은 여덟 개이며 인간의 충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것이 두 개였다. 그리고 충돌에는 동양과 서양, 남과 녀, 빈부 격차 등 여덟 개의 충돌은 우리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듯했다. 그리고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두 자아와 문화 사이클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 관념에 점점 마음이 끌리듯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두 자아는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말하는 것인데, 물론 우리는 개개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취하지만, 인간으로 이루어진 풍습과 사회의 울타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동양의 풍습과 서양의 풍습, 지역과 성, 직업에 대한 풍습은 인간이 자라나면서 몸속에 입력되는 전자칩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을 하는 것에 관여하고 독자적인 생각을 이루어 낸다. 그러나 같은 풍습을 몸에 지닌 다른 인간도 비숫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취하는 인간이 생겨나고 편이 갈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개인, 집단, 사회, 국가, 세상을 이룬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문화 사이클이다. 이 모든 요소는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간들의 충돌을 설명하는데, 이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저자가 앞서 말해주는 것 같다.

이런 문화 사이클과 같이 이 책의 여덟가지 주제 또한 내 생각에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충돌, 지역문화의 충돌, 동서양의 충돌은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는 곳에 따른 자아의 이질성, 그런 자아들의 충돌. 그리고 이것은 인종간의 추돌로 이어지기도 하며 다른 믿음을 가진 인간들의 충돌로 이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자아를 가진 인간들이 행동함으로써 다른 물질적인 이익을 얻고 다른 생각과 다른 성, 일의 다른 입장의 차이점에 대해 불만감을 가지고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지역문화나 동서양, 남반구와 북반구의 물질적인 충돌에 관여가 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사는 곳에 따른 충돌과 가진 것에 대한 다름에서 나오는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로 나누어진 주제에서도 다른 한쪽의 기준을 갖고 있다.

이 책은 마치 소설과 논문을 섞어 놓은 듯한 형식을 갖고 있다. 자칫 지루해보일수 있는 노문의 내용을 소설과 같이 스토리를 말하며 그 사이에 툭툭 던져놓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것의 의도치 않은 조합이 새로운 발명품이 되는 것처럼 이 책은 그 효과를 보통 이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동서양의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내한 차이, 남녀가 각기 다른 것을 갖고 있는 것, 인종의 차별이 아닌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계층의 차이, 다른 것이 들어선 다른 지역의 차이, 믿는 것이 차이,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 대한 차이, 사는 곳의 차이. 이 세 줄이 바로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른 주제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을 갖고 있기에 그렇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 열 가지 항목, 여덟 가지 주제, 4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은 다름에서 나온다. 이 책에서 말하는 충돌의 해법은 그 다름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자아의 상호의존성,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다시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을 잊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어느 샌가 사러져 버리는 것을 이 책은 계속 머리에 박아놓음으로써 더 공존에 다가가게 한다. 막 내가 깨달은 참이다. 이런 공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을 넓혀간다면 많은 자아가 하나의 자아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러면 또 재미가 없어질 것 같기도 하지만, 다양함의 동일함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상상의 나래를 펼친것 같은 기분이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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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 아이들 - 개정판 카르페디엠 5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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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이 어디일까.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장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한곳은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걸 문제라고 내냐며 궁궐이라고 얕은 지식으로 잘난 체를 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의 주위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은 교육환경. 즉, 학교다. 학교는 조선시대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엄격하게 통제하며, 매로 우리들을 가르쳐 왔다. 그 모습은 시대만 달랐지, 우리 생활에서 그대로 전해져 왔다. 학교에서 갖가지 교칙과 공부로 우리를 얽매어 두고 체벌이라는 매로 우리를 가르친다. 그런 우리의 학교를 그린 작품<모래밭 아이들>을 보도록 하자.

나는 아픈 아내를 위해 중학교 임시교사를 한다. 그러던 처음 담임을 맡은 반은 문제아들이 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3학년 3반이다. 처음 만나자마자, 이이들은 선생님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어쩌면 아이들이 문제아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그 후 나는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고, 부당한 일에 같이 나서주었다. 그런 나에 아이들은 마음을 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농장에 가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모래밭아이들’이라며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의 현재까지의 교육현장을 아주 판이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환경은 물론 선생님, 학생들의 우리의 모습 같다. 그리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우리의 학교도 책에서 나온 구즈하라 준 선생님이나, 시노게부 선생님, 모리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신다. 엄마 세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모리 선생님처럼 교육은 엄격하며, 규율에 따라야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을 만나면 답답하고, 수갑을 차고 있는 듯하였다. 그 생각은 너무 풀어주면 날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구즈하라, 시노게부 선생님 같은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거나, 묵묵히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정말 학교생활은 장밋빛이다. 나는 거의 모든 성향의 선생님들을 만나보았지만 좋은 성생님은 좋고, 나쁜 성생님은 나쁘다 생각하였다. 규칙에 꼭 따라야 하나. 단체가 되어야 하나. 하며 우리들은 불평을 한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을 미워한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말하며 반발한다. 규칙에 따라야하며, 일원화가 되어야 한다. 나도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우리는 하나의 성향이 아니다. 책에서도 본 것 같이, 철학적인 아이, 투쟁적인 아이, 시를 좋아하는 아이 등 우리의 성향은 갖가지다. 이것을 하나의 방법인 공부로 문제아니 뭐니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선생님들도, 우리가 잘못되지 않기 위해, 규칙을 만드며, 그것에 어긋나면 체벌을 해 바로 나가게 하려한다. 그리고 일률적으로 안 하면 너무나 복잡하고, 이끌어나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세대에는 아이들을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선생님이 나왔고, 그 관념이 현재의 선생님께 영향을 주었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해서 행하시는 선생님도 계신다. 좋은 생각으로 하시지만, 그 방법은 우리에게 독이 될 뿐이다.

현대는 바뀌었다. 다 같이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다 다양하다. 모두 문제아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구즈하라 선생님이나, 시노게부 선생님을 원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길 원하는 세상이 왔다. 라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을 이해 할 수 있고,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 안다.

앞에서와 같이 나는 모리 선생님처럼 꽉 막힌 선생님을 만났었다. 그 선생님은 규칙과 질서를 중요시 하였고, 이념조차 구식 같았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변화가 있으면 문제가 생기고, 혼란스럽고, 또 너희가 나쁜 길로 갈까봐 엄해지신다고 하셨다. 나는 마지막 그 선생님께 ‘문제가 생기면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해결하면 되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이제는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더욱더 좋은 성생님이 되셨을 것 같다.

이 책은 마치 일본 드라마 ‘헤머세션’을 떠올리게 하였다. 한 교사가 반 아이들의 문제를 보듬어주고,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교사는 어떨 땐 과격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알려준다. 선생님은 우리를 위한 존재이다. 모두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모리 선생님은 바뀌어야 하지만, 구즈하라 선생님이나, 시노게부 선생님이나, 모리 선생님이나 다 같은 좋은 선생님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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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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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도서관에 가서 다시 한 번 그 책을 뽑아들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즐겨온 작품이었다. 사회에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헌신적인 사랑. 이 세계의 위대한 작품 등 찬사를 드러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기대와 존경을 가지고 책표지를 넘겨갔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관찰자인 닉이 롱아일랜드와 뉴욕에서의 자신의 기억을 풀어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3인칭 관찰자시점의 작품이었다. 닉은 미국의 꿈을 꾸며, 증권일을 하기위해 서부에서 동부로 온 청년으로 개츠비라는 갑부의 옆집에 살게 된다. 어느 날 닉은 개츠비로부터 파티의 초대장을 받게 되고 그의 파티에 참석한다. 여기서 닉은 처음으로 개츠비를 만나고 그와 친해지게 된다. 그렇게 지내면서 닉은 조던에게 개츠비의 과거와 데이지라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개츠비는 결혼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울푸심이라는 밀주업자와 함께 불법적인 돈을 번다. 그리고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곳에 저택을 구입하고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연다. 과거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했지만, 부자인 톰과 결혼했고 지금은 개츠비의 집 맞은편 해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남편인 톰은 차수리점 윌슨의 아내인 머틀과 바람을 피고 있다.

한편, 닉은 그런 말을 듣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의 만남을 알아채고 자신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모인 호텔에 개츠비의 부의 출처와 학력 등을 폭로한다. 개츠비는 톰을 버리고 자신에게 와달라고 하지만, 데이지는 대답을 피하며 차로 나오다가 머틀을 쳐 죽게 만든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대신 죄를 뒤집어쓰지만, 데이지는 톰에게 다시 가버린다. 그에 이어 톰은 윌슨에게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하고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데이지를 비롯하여 파티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나 울프심도 오지 않고 개츠비의 친아버지와 닉이 외로이 장례식을 치른다. 닉은 개츠비의 장례식을 치른 후 변질된 ‘미국의 꿈’과 동부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조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서부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랑은 우리의 사회에 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등. 위대한 개츠비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개츠비는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버렸음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기 위해 불법으로 돈을 벌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만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감싸주고 끝까지 사랑한다. 정말로 위대한 개츠비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 과거로 발목이 잡히고,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아닌 돈을 사랑한 것이며, 결국 또 버린다. 그리고 오해로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정말로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말할 사람일까? 아니, 멍청하다. 너무나 멍청하고 착하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많은 모습으로 변신을 하며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너무나 숭고하며, 돈이 아닌 오직 사랑을 원한 사랑, 그에 반해 돈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손바닥 바꾸듯 바꾼 사랑, 돈으로 사랑을 사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다 차지하려는 사랑. 분륜으로 사랑을 빼앗기고 분노하는 사랑. 이 사랑은 하나의 사랑이지만, 그 모습은 다양하다. 나는 다시 이 작품을 읽으며, 왠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생각났다. 제자의 죄를 대신 쓰면서 교사직에서 나와 갖은 고통과 배신, 그러면서도 사랑을 원하는 마츠코는 왠지 개츠비와 비슷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개츠비는 사랑을 갈망하고 이를 얻기 위해 이런 사태까지 온 게 아닐까 생각된다. 처절하고 숭고한 사랑. 이 사랑이 바로 작품에서 개츠비가 보여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막장드라마라고 말할 것이었다. 서로의 관계가 뒤엉키고, 혼란과 파멸이 난립하는 그런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사랑으로 감정이 변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이질적이고, 판타지적인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겉으로는 잘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속을 보면 이렇게 더러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을 가지며 봤었다. 그때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부분만 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다시 읽어보니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감정뿐만 아닌 사회의 경제, 그 시대상을 작품에 걸쳐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시대는 1920년대이다. 그때는 미국이라는 곳에서 성공하려는 미국의 꿈이라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미국으로 건너간 시대이기도 하며, 1차 세계 대전이후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허무적ㆍ쾌락적 경향에 빠졌던 미국의 지식인들과 계급 청년들을 말하는 잃어버린 세대가 있었던 시대이다. 그리고 재즈와 춤이 유행했으며 대규모 파티가 열렸고 비록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으나 밀주가 성행했다. 이런 시대상은 <위대한 개츠비>에 속속들이 녹아져 나타나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렇게 깊이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냥 불쌍하게 죽은 개츠비로군.’, ‘막장 드라마같다.’ 그런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때 사회상이라는 숨겨진 배경을 알면서 시대에서 살아가던 개츠비와 그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마치 내가 그 시대의 닉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사랑을 갈망하는 현대인. 그 속의 배신과 비극, 그리고 좌절. 그 느낌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찾게 하는 마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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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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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만큼의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가? 만 번? 천만번? 아마도 그것을 뛰어넘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선택을 하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하기에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생활에서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무슨 옷을 입을지, 버스로 갈지 지하철로 갈지 선택한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위저드 베이커리>은 선택에 변하는 미래로 인해 나에게 선택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엄마 없는 ‘나’는 아빠와 같이 살아가다, 새엄마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딸 무희가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얼떨결에 ‘나’가 범인이 된다. 나는 도망쳐 단골인 빵 가게에 가게 된다. 그곳에는 마법사 점장과 파랑새가 있다. 마법의 빵 가게인 이곳에서 빵의 산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보게 된다. 이 빵의 정체는 결국 경찰에 알려지게 되고, 경찰의 표적이 된다. 빵집 점장은 시간을 되돌리는 쿠키를 주면서 떠나라고 한다. ‘나’는 다시 집으로 가게 되고, 시간을 되돌리는 쿠키로 두 가지 결말에 달하게 된다. 먼저 아빠와 새엄마는 결혼하지 않고, 베이커리에도 안 간다. 나는 인사하는 파랑새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빠가 새엄마 새엄마와 헤어지고는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위저드 베이커리가 어딘가에 문을 다시 연 것을 알고 빵 가게로 달려가는 결말이다.

나는 오늘 파란 옷을 입었다와 나는 오늘 빨간 옷을 입었다.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보자. 이런 선택으로 인한 그 결과는 수천 가지처럼 많아진다. 이걸 페러렐월드라고 한다.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하지만 사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지가 있고, 이런 계속된 선택의 시점에서 나의 미래는 달라진다. 내가 빨간 옷을 입었다면 죽었고, 파란 옷을 입어서 살았다면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마법의 빵을 사게 됨으로 사람을 죽이게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나의 선택이 나의 주위의 모든 것을 바꾼다면 선택을 간단히 할 수 있을까?

마법의 빵을 사서 다른 미래를 선택한 사람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미래를 바꾼 ‘나’. 책에서 선택이라는 하나의 요소 때문에 미래가 바뀐다. ‘나’는 새엄마가 있으면 좋겠니? 하는 아빠의 말에 괜찮다고 한다. 그로 인해 지옥의 나날이 펼쳐지고, 성폭행범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위저드 베이커리에 오게 되고, 여러 사람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보게 된다. 시간을 되돌리는 쿠키도 그렇다. 시간을 되돌려서 결국 새엄마를 만나지 않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의 일들은 없어진 것이 된다. 하나의 선택으로 내 기억이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나’는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일까? 새엄마를 만나지 않게 되지만 나의 기억은 사라지고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를 보듬어 주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있다. ‘나’가 무엇을 선택해 어떤 생활을 해나갈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나’가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이런 문구를 쓰고 빵을 판매한다.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부정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왜냐면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선택을 하여 우리의 앞날을 꾸며간다. 매일 하는 선택이지만 이 선택에 의해 많은 것은 달라진다. 내가 화를 못 참아서 사람이 죽이기도 하고, 선거라는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한 나라의 앞날이 정해지기도 한다. 과연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미래가 완전히 바뀐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내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선택의 길목에 선 사람들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택이라는 작은 요소에 진지하게 맞서야 한다. 이 선택으로 나의 인생은 바뀔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선택지를 선택한 것보다 내가 선택한 길에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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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를 찾습니다 - 관계맺기에 서툰 청춘에게
몸문화연구소 엮음 / 양철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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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느 하나의 독보적인 생명체이며, 또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혼자 있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이브를 주었고, 그 둘은 여러 생각을 통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갔다. 어느 날 이브에게 뱀이 와서 속삭인다. “너희도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은 신이 될 수 있어” 이브는 아담에게 그를 말했고, 둘은 고민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지만 정말로 신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둘은 서로 말하고 서로의 생각을 판단하였고, 하나의 선택을 했다. 결국 옳은 선택은 하지 못했지만, 그 속에는 관계라는 개념이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관계, 하나님과 아담, 이브의 관계, 뱀과 이브의 관계. 말하자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관계는 무슨 말일까.

  태어날 때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좁게는 아빠, 엄마, 형제. 넓게는 친척들까지. 쉴 새 없이 반응을 해주어야 한다. ‘까꿍’하면 까르르 웃어줘야 하고, 배변이나 배가 고프면 울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을 시작으로 관계라는 그물을 넓혀왔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게 어려웠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어느 날,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평소 책만 읽고, 말하는 것 보다 글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사람에게 관계라는 건 이런 것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양철북에서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계에 대한 책을 준다고 했고, 얼떨결에 당첨되어 책까지 받게 되었다. 책을 받기는 했지만 영 책의 표지를 넘기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목자를 보니 연애, 우정, 가족을 비롯해 관계의 소통망인 sns나 팬덤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 범위가 넓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롤로그를 읽는 나의 마음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겪었기 때문일까. 친구에 대한 내용에 공감이 많이 가는 것 같았다.

  첫 장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중 남고에 다녔던 만큼 사랑이라는 것을 해본지가 오래돼서인지 사랑에 대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랑은 수입된 것이라는 문구를 보고는 관심은 밥때 된 개처럼 빠르게 돌아왔다. 사랑이아는 단어 자체가 수입된 것이며, 사랑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은 꽤 큰 흥미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음의 요즘 사랑의 깊이에 대한 내용이나, 돈이 되어버린 사랑에 대한 내용은 공감이 갔다. 요즘의 사랑이 얕다는 생각은 나도 생각하던 것이었다. 요즘 사랑은 ‘우리 1일이야’하며 날짜를 세고 그에 맞는 날에 선물을 주고 이벤트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 같다. 사랑은 물질이 아니라, 감정이 오고가야 한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 감정(사랑)은 친구보다 더 좋은 가방을 갖는 것이며, 보여주기 위한 사랑 같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메말라 버리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게 진정 사랑이라고 부를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다.

  다음 장은 우정이었다. 우정. 내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친구를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했고, 생일도 챙기고, 글을 써야하는 과제는 거의 내가 써주었다. 고3이 되고 나는 그 아이의 자소서 쓰는 것을 도왔다. 그 친구 역시 나에게 고마워했지만, 이번에도 거의 내가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는 내가 시간이 많이 비었기에 자신을 도운 줄 알지만, 사실 나에게도 그다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사실, 나는 소설가를 꿈꾸고 그때, 공모전을 위해 소설을 쓰고 선생님께 보여드려야 했다. 하지만 친구의 자소서에 시간을 쓰다 보니 소설은 쓰지 못했고, 그럴 거면 소설가를 하지 말라는 욕까지 듣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번엔 자소서에 신경이 덜 가게 되었고, 친구는 화를 냈다. 그때다. 이제 그 친구를 돕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 동안 내가 너무 잘해 줬기에 친구는 나를 항상 도와주어야 하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 도움조차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이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가족과 같이 처음부터 만난 것도 아니고, 좋아서 만나는 애인과도 다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어린왕자와 같이 내가 그 친구에게 길들여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창한 숲도 간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가까이에 있지는 않았는지.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을 몰랐다. 오히려 달랐기에 너무나 다른 가치를 가진 존재이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내가 너무 참고 그의 요구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 속에 나오는 평범하지 않은 우정들을 보면 왠지 화가 나면서도 반성이 되었다.

  삼장과 칠장은 sns와 연예인 팬덤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즘은 여러 소셜네트워크서비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로써 소통한다. 그러나 이것이 꼭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예인 팬덤도 사이버로 계속 연예인과 소통하고, 팬들끼리 정보도 교류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반쪽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올리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소통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좁은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관리하고, 관심을 보고 싶은 소통이라고만 생각되는 것들도 있다. 머리로만 하는 소통은 그다지 좋은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서 오감으로 소통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또한 팬 역시 연예인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자신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사장과 팔장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었다. 지금의 내가 진정 나인지, 나는 자존감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나의 생각으로만 관계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관계에 중독 된 나머지 너무나 불안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 부분 모두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해결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나를 앎으로써 나를 돌아보게 되고 좋은 관계를 얻을수 있다고 책은 말하는 듯하다.

 오장과 육장은 가족과 어른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은 태어나서부터 만나는 사람들이며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그렇기에 조심해야 하는 관계인 듯하다. 사람들은 집안의 나와 집 밖의 내가 다르다. 집에 오면 우리는 하숙생과 같이 수동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좋은 관계가 아니다. 아빠는 외로운 존재가 안 되어야 하며, 엄마는 누구에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 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딱딱한 하숙생 모습에서 벗어나 서로 소통하고 이해해야만이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다. 이 장에서 많은 가족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부간의 이야기, 자식과 부모의 이야기. 그렇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소통일 것이다.

 ‘내 친구를 찾습니다.’라는 책이름을 보고 목차를 읽었을 때는 좀 이야기를 포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내 사랑을 찾습니다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사랑에 종류에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등 여러 사랑이 있기에 좀 더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제목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이나, 가족, 나 자신 조차 나의 친구다. 친구라는 단어에서 우정도 생각 할 수 있지만, 친구는 마음을 나누고 친해진 사람을 뜻하기도 하기에 애인이나, 가족도 역시 친구라는 단어에 포괄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 우정, 자신감, 우상, 가족애 등 많은 감정들이 이 책 속에는 꿈틀거리고 있다. 그에 대한 개념에 대한 고찰이나, 좋은 관계는 어떤 것인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을 반성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한다. ‘관계 맺기에 서툰 청춘에게’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책은 어느 누구가 봐도 괜찮을 책이다. 어느 누구도 사랑과 우정, 가족, sns,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고민 중 하나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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