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젤리 삶창시선 36
김은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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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뜨거운 안녕


목욕탕에서 때를 밀다가 속옷을 갈아입다가

상처에 눈 머무는 순간이 있지

훔쳐봄을 의식하지 않은 맨몸일 때 가령 상처는

가시라기보다는 도드라진 꽃눈,

돋을세김한 순간의 미소래도 무방한데


어디에 박혔건 내력이야 한결같을 테지만

죽지 않았으니 상처도 남은 것 그리 믿으면

더 억울할 일이 없을까 


나는 상처를 받았고 또 몇 구러미의 상처를 보냈나

403호로 배달된 사과 상자를 대신 받은 기억 있고

쓰레기 더미 속 헌 옷을 기쁘게 주워 입기도 했네


하지만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

내게는 꽉 끼었지 그래 나는 아팠었지

천진한 햇살마저 나는 조금 아팠겠지


지나갔으니 묻지 말아야 할까

왜 하필 내게 그걸 보냈는지

난 다 자랐으니까

폴리백처럼 가벼웠졌으니까


(하략)



김은경 시인의 시는 불량하다는 걸 알지만 계속 먹게되는 불량 젤리처럼 자꾸자꾸 읽게 된다.

강렬한 첫 단맛, 그리고 씁쓸한 뒷맛에 중독되어 간다.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걸

몇꾸러미의 상처를 주었는지 세어보지 않았다는 걸

상처가 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나는 보지 못했다.

이런 걸 볼 수 있으니 시인이다.


외로워서 살이 찌는 이 밤에 

결핍이 밀어가는 오늘을 위해

구름을 시로 바꾸는 법을 배우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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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0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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