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294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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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 구두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

구두 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에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 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아야 시를 쓸 수 있는걸까 생각한다

많이 보고 많이 쓰는 사람

많이 보고 적게 쓰는 사람

적게 보고 많이 쓰는 사람

적게 보고 적게 쓰는 사람

중 누가 시인이겠느냐 묻는다

많이 보고 적게 써야 진짜 시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끊임없이 몸을  물고 늘어지며 뒤척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

지루하고 답답한 삶의 압력이 강제로 상상력을 분출시키기 떄문

에 시를 쓴다고 시인은 말한다


무엇 하나 가만히 들여다본 적 없기 때문

누군가에게 정열적으로 빠져본 적도 없기 때문

에 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저 나는 뒤척이는 마음

분출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

이라는 걸 시를 읽으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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