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 마음으로 기억하는 인물 시리즈 1
김이슬 지음, 김소영 그림 / 주니어단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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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에게는 아내가 여덟이나 있었지만 손이 귀했다.

총 아홉의 자식들중에 셋만 남은 고종에게 육십에 낳은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지만

나라를 잃은 왕에게 낳은 딸은 왕가로 입적시키는것 조차도 일본의 눈치를 봐야 했다.

다섯살이 되어서야 겨우 입적할 수 있었고 열살에야 겨우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1925년 3월 열네살이었던 덕혜옹주는 일본의 계략하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1930년부터 시작된 민족의 뿌리를 지우려했던 민족 말살 정책으로 덕혜옹주를 완벽한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계략이었다.

순종의 장례식때도 덕혜옹주는 장례식에도 참석 못하게 했으며 생모인 양귀인의 장례식때에는 상복조차 허하지 않았다. 이는 나라에 남은 마지막 상징인 덕혜 옹주에 대한 민중들의 희망을 완전히 밟아 버리려 한게 아닐까?

열일곱 고아가 된 덕혜 옹주는 혼자가 된 이후 일본인들에게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가 된다는걸 알게 된후 고종처럼 본인도 독살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격이 예민하게 바뀌어 간다.

결국 덕혜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다케유키와의 결혼으로 인해 덕혜는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병은 깊어만 가고,,,

누구나 선택을 해서 태어나지는 않지만,

본인의 삶에 단 한번도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나라가 약해서 너무나 쓸쓸하게 사라져 간 덕혜옹주,,,

같은 여자로써도 같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도 너무나 가슴이 너무 아픈 일인것 같다.

글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 그시절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수 있다.

그시절 독립을 위해 우리의 선조들이 어떠한 운동을 했으며 어떻게 독립이 되었는지 또한 세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배울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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