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1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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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그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값진 선물이다.

47년만에 깨어난 고박경리 작가님의 미출간작, 녹지대. 확실히 이 책을 통해 젊은 박경리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과거의 기억, 내가 살아보지못했던, 하지만 누군가 살아왔고 지나왔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어 향수를 잔뜩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다방과 문학인들과 시화전과 통금시간...

그때도 어떤 이들은 아파했고 슬퍼했고 사랑했고 또 뜨겁게 사랑했다.

1960년대 아늑하게만 느껴지는 그 때. 박경리 작가는 그 시대에 살았던 이들을 통해 예술을 말하고 삶을 말하고

사랑을 말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 혹은 오래전 드라마를 보는 듯 했고, 줄타기에 올라탄 광대를 보는 듯

한 장 한 장이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그만큼 그들의 치열한 삶은 숨가빴고 위태로웠다.

그 시대가 그러했던 것일까.

김정현과 인애, 그리고 은자. 특히 이들의 캐릭터는 생생할 정도로 무척 가까이 느껴졌고 김정현과 민상건의 

캐릭터는 다른 곳에서 다시 볼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통속소설, 세태소설이라고 봐야할까. 박경리 작가님만이 그려낼 수 있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나는 한 번 토지문학관을 가본 적이 있다. 너무도 보고싶었던 박경리 작가님을 한 번도 보지못한체 결국 이제

영영 못본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슴 아프지만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모든 것이 위로가 된다.

부모를 잃고 큰 아버지댁에 기숙하며 사는 강인한 여인 인애. 광기어리고 슬픈 조각가 민상건, 그를 사랑하는 숙배.

그리고 인애가 사랑하는 김정현과 양공주의 딸로 태어나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다른 이와 결혼하는 은자. 남편과의 가식적인 가정생활에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기도를 하는 숙배의 엄마, 최경순.

이들은 모두 철저히 외로운 이들이다. 그들이 만났기에 삶은 더욱 외롭다.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없고 서로를 더

상처낼 뿐이다. 좌절된 사랑이 결국 김정현의 죽음을 통해 숙배와 민상건이 구원을 받았을 지 몰라도...

인애와 김정현의 이야기를 소설 안에서 더 많이 만나지못해 아쉬웠다. 김정현이라는 인물은 소설 속에 많이 나오지

않아도 그가 인애에게 토해내는 그의 감정이 실린 편지만을 보아도 그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린 감정의 소유자인 그를 충분히 글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또한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녹지대라는 장소는 이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들이 만나는 곳이자, 도피처이다. 마치 홀로 떠있는 섬처럼..

과거 예술가들의 거리였다던 명동의 향수와 함께 문학인들이 모이는 이곳은 어쩌면 실제로 존재했을 지도 모르겠다.

 

요즘 작품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지극히 통속적이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레코드판을 꺼내어 오래전 그때의

음악을 꺼내 듣듯 이 작품은 한국문학작품으로서 그립고도 아픈 향수와도 같은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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