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송해나


입시,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고등학교 3학년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과 그 학부모를 상대하며 단단한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내가 나중에 한국에서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거주할지도 말지도 불확실하지만) 설령 살더라도 이 나라에서만큼은 아이를 양육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매일 힘을 쏟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우울증과 불안 발작 및 공황 발작은 내 삶과 뗄 수 없는 지병이 되었고, 그건 자기혐오로 아주 쉽게 이어졌다. 이 자기혐오는 또다시 우울증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였다. 이런 내 생애에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란 상상조차 쉽지 않은 대업이었다.

반드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은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네 핏줄이 그래도 중하다'면서 나중에 결혼해 보면 달라질 거라고,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더 소중한 법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내가 열 달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나는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자신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사교육의 현장에 푹 담겨 있었다. 양육자들은 자식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고, 제 몸을 깎아가며 아이들의 교육에 열을 올렸다. 맞벌이로 입에 풀칠하며 살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없으니 학원 여러 군데를 뺑뺑 돌리기도 했다.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뭐고 못 하는 건 뭔지, 그래서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 따위 없이 매일 주어진 삶만 살아냈다.

나는 학생 때 하고 싶은 게 많았다. 학교 공부는 당연히 지겨웠지만, 어떻게든 대학만 가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테니까, 현재의 시간을 깎아서 미래의 내 행복을 마련해보려고 애썼다. '요즘 애들은 안 그래'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나 때도 내 이전에도 분명 나 같은 학생만큼 그렇지 않은 학생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이야기가 서글펐다.

꿈을 빼앗긴 세대. 꿈꿀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 이 사회에서 나는 양육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임신 일기'라는 계정이 화두가 되었다. 작년 일이었고, 그맘때쯤 나는 트위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건너 건너 소식만 듣다가 '임신 일기' 계정주의 책이 발간되었고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출간 전에 책을 받아 읽을 수 있었다.

읽기는 완료했지만 나는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어떤 말을 얹어도 임신 경험이 없는 나는 그냥 말을 얹는 것 정도 밖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글은 어딘가에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보태고자 했다.

한국은 저출생이 문제라고 떠들며 정작 제도는 미비하다는 건 계속 말하기도 지겨울 정도다. 사회적으로 출생을 장려하며 가임기 여성지도 따위나 만드는 헛짓거리를 하며 정작 임신한 개인을 위한, 그리고 출생한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위한 대책은 그다지 없다. 단지 개인의 선한 의지에만 의존해 사회를 억지로 굴린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마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미국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사회 제도적으로도 그렇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임산부에 대한 인식도 그 격차가 너무 커서 기함을 토했다.

그래,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지금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울 이 시대에는 요원한 일이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다시 온몸을 휘감았다. 내 다음 세대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에 적극 저자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어서 나는 탈조선(한국을 벗어난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 것)을 다시금 꿈꾼다. 도망치는 거, 맞다.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으니까.


육아휴직 제도를 악용한 사례를 살피면 정말이지 욕이 안 나올 수 없었다.

P. 146~147 놀랍게도 육아휴직 기간에 아기를 동반하지 않고 장기해외여행 혹은 어학연수를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공무원들이 발각되어 휴직 중 다른 활동에 대해 엄격한 확인이 행해졌다고 한다. 아니, 그 바쁘다는 육아 중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다고? 다양한 기사를 확인해보니 놀랍지도 않게 대부분 남성 육아휴직자들이 벌인 일이었다. 육아를 핑계로 휴직계를 낸 후 아기의 양육은 모두 아내에게 맡긴 채 본인의 승진과 여가를 위해 시간을 이용한 남성들 때문에 진짜 아기를 양육하는 사람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
행정도 참 그렇다. 육아휴직을 악용한 남성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탄탄한 장치를 구축하기보다는 모든 육아휴직자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행적적 나태함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자의로, 타의로 육아를 떠맡게 된 여성을 더 집에만 가두고 말았다. 고민하지 않는 행정가들은 이 죗값을 어떻게 치르려고 그러나.


저자는 임신 일기를 쓰면서 임신 주수에 맞춰 고민이 다양화하고 확장하는 스스로를 목도하기도 했다. 임신 초기와 후기는 분명 다르고, 사람은 자신이 이미 겪었지만 지나고 나면 본인이 힘들어했었다는 것조차 잊기도 한다. 그런 고민이 담긴 소중한 일기를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나의 경험을 일기로 써 내려가며 또 다른 임신 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한국에서는 절대 아니야.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단어도 있었다. '질식분만 Vaginal delivery'이라는 단어인데, 흔히 말하는 '자연분만'을 뜻했다. 네이버에 '질식분만'을 검색하면 그 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자연 분만에 대한 설명만 구구절절 나와있다. 아직도 단어에 대한 인식은 가야 할 길이 멀다.

메모도 해놨는데, 동음이의어라는 것은 알지만 '질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보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P. 296 사람들은 엄마라면 그저 모두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너 역시 그렇게 컸고 아기를 맞이하는 건 원래 그런 거라고 말이다. 엄마는 다 그런 거란 말, 모두 다 그렇게 살았고 너도 그렇게 살 거란 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 이 말은 아기와 양육자 모두에게 너무 폭력적이다. 이런 말들은 아기를 의무감이나 죄책감으로 돌보라는 이야기의 변주이고, 임신과 양육에 관심 없는 사회를 용납해줄 뿐이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 산후 회복을 위한 몸조리, 양육까지 긴 과정을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이 모든 것이 개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임신에 대해 신비화하고 신성시하면서 정작 현실은 들려주지 않고 쉬쉬하며 감추는 것, 그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아기와 양육자 모두에게 폭력적이다. '내가 널 이렇게 고생해서 낳았으니 너는 나에게 잘해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하는 많은 양육자들이 떠올랐다. 오롯이 개인의 몫의 고통을 감내하면 그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더 많은, 다양한, 임신 일기가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모성 서사 하나하나가 다 여성의 이야기니까.





*본문 참고 기사

https://www.yna.co.kr/view/MYH20190211014800038



#임신일기 #송해나 #문예출판사 #나는아기캐리어가아닙니다 #임신초기증상 #임신증상 #임산부선물 #임신과정 #초기임신증상 #임신스트레스 #임신3개월증상 #임신6개월증상 #임신9개월증상 #산모교실 #임신준비 #임산부 #임신







Copyright. 2019.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