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는 내가 평소에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구의 증명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으로까지, 최진영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정말 인상깊게 와닿았고 그래서 항상 신작 소식이 나올 때마다 몹시 기대하며 읽는 작가이다.
최진영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물들의 쓸쓸함을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어떤 쓸쓸한 내면을 잘 묘사한다고 해야하나, 그런 힘이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나는 그 캐릭터들을 가여워하거나 안쓰러워한 적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인물들은 결국에는 자신들의 힘을 가지고 일어서는 의지와 몸짓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안심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고 이번 책도 정말 재미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다른 책들 찾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언니에게> 속의 '제야'는 책장을 덮고나서도 이 책의 독서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미성년자인 제야가 성폭행을 당하게 되면서, 나는 제야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어떻게 제야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제야가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듣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이렇게 확신에 가깝게 예상할 수 있는 걸까 스스로 의문을 가지다가 그 일이 아주 타인의 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을 겪고 나면 이전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 하지만 제야는 이전의 제야로 살아갈 수 없지만 제야를 그렇게 망가뜨린 남자는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것. 제야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고 그래서 제야는 이제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에 지속되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성폭행을 당하기 전의 제야에게는 우애좋은 여동생이 있었고, 친한 사촌 남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성폭행을 겪고 나서 제야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바뀌어버리며 그토록 친밀했던 동생들에게 아무런 유대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완전히 파탄나게 된다.
작품 속에 제야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사람들에 대해, 세상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이 대목이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너무 마음아프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