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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평점 :
알바하는 곳에서 사장님은 이 책 제목을 보고 “책 제목이 뭐 그러냐?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도 포용해야지”라고 하셨다. 잠시 놀라 벙쪘지만, 마침 방금 책에서 본대로 답했다.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뜻이래요. 여성인권운동의 정의까지도 남자들이 내리려고 하는 태도를 비꼬는 말이요.” (정말 예의바르게 말했다.) 사장님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하셨다. “너도 대학로 나가서 시위하고 그러냐? 말도 안 되던데”
페미니즘은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이지만, 의외로 주의깊게 살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르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글쓴이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페미니즘 도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강준만 교수는 여성도 아니고, 페미니즘 활동가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나는 그를 잘 모른다. 다만 이전에 읽었던 문장론 책에서 하도 그의 글들을 많이 인용하길래, 언젠가 궁금해서 이름을검색해봤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저서들을 보고 놀란 경험은 있다. 그때 그가 ‘인물과 사상’을 창간하면서 내걸었다는 ‘출판의 언론화’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그 기치는 이 책에서도 발휘되었을 뿐 아니라, 현 시점의 복잡다단한 한국형 페미니즘을 다루기에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안다. 페미니즘 도서는 재미로 읽는 게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 책이 재미가 없어서 안 읽었다는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무거워서라도 안 읽는 나조차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다 알고 있거나,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베스트셀러는 번역서다. 그 책들이 다루는 페미니즘 이론에 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다가도, 작가가 속한 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경우 그 내용의 뛰어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읽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반면 이 책은 일베, 유아인, 미투운동, 나꼼수, 유시민 등이 얽힌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다루니 더 쉽게 읽힐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논쟁을 빈틈없이 다룬다. 한 사건을 다룰 때마다 사건의 전말을 육하원칙에 의거해 상세히 서술하고, 그에 대해 어떤 공방이 있었는지 여러 입장들을 보여준다. 머리말에서 “양쪽의 소통을 위해 양쪽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간의 논쟁과 논란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런 소통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듯이, 그는 여성학자의 칼럼, 정치인의 sns 게시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여론을 대변하는 다소 공격적인 네티즌의 댓글까지 인용한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를 저격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 뜨거운 논쟁의 장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3. 바로 위의 이유 덕분에, 실용성까지 있다. 빼곡한 논리로 무장한 주장을 접함으로써, 앞으로 겪게될 거의 모든 논쟁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관해 입장 자체를 가지기를 조심스러워 했거나 망설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탄탄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식은 있었지만, 딱 그 뿐이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있는지 대충 아는 주제에 함부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워마드 때문에 페미니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해왔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비난해 온 것인가. 나 또한 오빠 페미니즘에 익숙해져 있던 것일까?
더불어 메갈리아가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있던 여성의 도덕 하한선, 유리바닥을 깨부수는 역할을 해냈다고 보는 관점은 충격적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여성을 주제로 한 문학과 영화, 드라마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이 주제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낸 그들 덕분이었다. 다소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행동해왔던 이들이야말로 유구한 역사의 가부장제와 싸워 짧은 기간동안 큰 변화를 이끌어낸 장본인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인의 애호박 사건과 그가 말한 ‘조직폭력배’의 존재도 당시와는 다른 시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이라는 트윗은 경솔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그가 쓴 글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유아인에 대한 팬심에 가려 그의 비논리적인 멘션들과, ‘폭도’와 ‘진정한 여성’을, 또 ‘엄마와 누이’ 그 외의 여성을 분류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그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지 못했다. 유아인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그저 팬심의 연장선일까?
유시민의 ‘조개론’과 ‘어용 지식인론’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파란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자식 세대에게 ‘니들이 촛불을 알어'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영 논리에 갇힌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시작할 알쓸신잡3은 챙겨볼 것이고, 항소이유서를 포함한 그의 책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대로 재미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잘못된 발언들은 스스로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까야 한다.
또한 나는 여지껏 ‘여성주의’라는 단어로부터 느꼈던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양성평등주의’라는 단어를 같은 말이라고 여기고 사용해왔다. 알고보니 여성주의는 잘못되었으니 양성평등주의를 논하자고 말하는 태도는, 여성의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이미 성평등이 이뤄진 것처럼 여기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가 여성이면서도 나의 불편함을 문제 삼지 않고 참을 만하다 여겼고, 내 친구들이 당하는 부당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내 무의식 속에 가부장제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로 다짐했다. 아니, 이것은 다짐보다 욕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의 잘못된 사상을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에 다른 페미니즘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았고, 이전보다 조금 더 알게된 나는 이제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두렵지 않다.
가부장제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여성인 나 스스로부터 가부장제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다른 세계의 일이 아니라, 바로 네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들을 것이다. 그들이 남자라서 하는 고민들, 겪고 있는 압박을 경청할 것이다. 이 과정으로 모두가 외부로부터의 편견에 담담하게 대처하고, 무의식 속에 잠재된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
p.s.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신지예 전 서울시장 후보의 이름을 반복해서 신지혜라고 잘못 표기했다.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