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이에 거리가 중요하다는 걸 지훈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줄자가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서 떨어지려 할 때마다 알람이 울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자꾸꾸 내게서 떨어지는 걸까. 지훈이처럼 시끄럽게 알람을 울려 주고 싶다.
삐삐삐. 삐삐삐. 삐삐삐. 삐삐삐.
701호는 텅 빈 우주였다. 황량했다. 아무 별도 보이지 않았다.
- P125

소리는 파동이다. 어떤 물질이 떨리고 그 떨림이 다른 물질을 타고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어떤 소리는 소음이 되고, 어떤 소리는 조화로운 음악, 즉 예술이 된다. - P141

쾅! 콰광!
큰 폭발이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삼촌을 포함한 101동 주민 중 어느 누구도 이번 폭발음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빅뱅이니까. 빅뱅은 내 안에 새로운 우주를 창조했다. 그건 우리 우주와 평행하게 있는 또 다른 우주, 할머니의 우주였다.
- P151

좋았다. 그냥 좋았다. 다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라 할지라도 믿고 싶었다.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우주에 엄마 아빠와 동생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건 내게 구원이었다. 최고로 좋은 소식이었다.
많고 많은 우주 중 단 하나의 우주, 멀고 먼 우주라 내가 결국 닿을 수 없는 우주라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그곳에서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어두운 거실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 P153

701호 할머니는 2018년 4월 14일 오전 11시경, 월드아파트 6층과 7층 사이 비상등, 즉 평행 우주 터미널을 통해 할머니의우주, 2081년 케임브리지로 돌아갔다.
- P156

2025년 9월 7일, 날씨는 화창하단다.
그날 케임브리지에서 우리 우주로 오는 길을 잘 찾길 바란다.
케임브리지 계단 구석 어딘가에 깜빡이는 비상등이 있을 것이다.
나는 63년의 시간을 거슬러 너를 찾아갈게.
그때는 너도 나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겠구나.
추신 : 참, 내 옆방에 누가 있는지 아니? 스티븐 호킹!
- P161

계단을 오르내리며 막다른 곳에 혼자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때로는 세상의 끝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계단 구석에 놀라운 진실이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었다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상식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다. 내가 건강한 아이들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20층으로, 20층에서 1층으로 단번에 쉽게 오르내렸다면 그진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진실은 계단으로 다니는 사람만 볼 수 있다. - P169

나는 월드아파트 계단 6층과 7층 사이 비상등 너머로 한 사람을 본다. 그 친구는 지금 책상에 앉아 평행 우주를 연구하며 나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곧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우주를 건너고, 다른 한 명은 시간을 거슬러 2025년 9월 7일, 케임브리지에서.
그때 우리 나이는 둘 다 스무 살, 어쩌면 서로를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알아보게 될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서로를 강하게 당기는 우주적 끌림이있기 때문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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