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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 예술 - 삶을 어루만지는 예술 그리고 철학 이야기
최도빈 지음 / 아모르문디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스 로드마커는 자신의 책『현대예술과 문화의 죽음』에서 이성적인 것, 과학적인 것을 추구한 결과로 현대예술이 공허함의 부산물들을 생산해냈다는 사실과 실제로 현대예술과 문화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의미와 가치를 내세우기 보다는 ‘키치’ 즉 재미가 최고의 가치판단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한스 로드마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고 현재의 예술계의 모습을 잘 읽어준다고 생각했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서나 ‘예술행위’를 관람할 수 있지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다시금 예술의 힘,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의미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 책을 한 권 만났다. 물론 과거, 예술이 담당했던 사회고발적이고 사회참여적인 기능을 회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 예술>을 통해 그 가능성을 다시금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뉴욕 현대 미술관을 소개하면서(MOMA) 예술의 힘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현재를 고발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예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이러한 임무에서 멀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시대적,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을 언급할 수 있겠으나 ‘사유하지 않는 시대’,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대’라는 문구에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더 이상 전시물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게 만드는 최종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며 앞에서 이야기한 ‘사유하지 않는 시대’, 곧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대한 부연 설명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이러한 장소를 찾게 되는 것은 ‘관람’이라는 행위자체에 중심이 있는 것이지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가토 츠바사의 작품을 소개하며 전시공간의 ‘대상’자체에서도 목격되는 가치의 붕괴를 추가적으로 독자에게 설명하는데 건축가의 말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다. “무언가를 건설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무너뜨리고 부수는 것이 의미 있는 시대다.”
그렇다고 저자가 현재의 예술에 대해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 미술의 기반을 다지고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문제의식의 회복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을 피력하기도 한다.
“ 많은 예술가들이 이 구조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고발해 왔다. 그 고발이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더라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갱도 안의 카나리아가 되어 아직 새로운 이상을 꿈꿀 수 있는 사회임을 보여 주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질식할 수 없다. ‘시대의 이상’은 바뀐다.” - 115쪽
저자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건축, 무용, 사진과 패션을 추가로 다루며 철학자의 눈에서 본 예술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단순한 현상을 설명하고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 버크,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철학자들을 언급하며 예술과 철학,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추구와 지향을 이야기한다. 책의 중간중간 삽입된 작품들과 사진들은 흥미를 더해주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그의 문체가 오히려 더욱 깊이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삶에 대해서 고찰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생각과 느낌만은 아닐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