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배명은 지음 / 고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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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임을 알립니다.*

#도서무료제공 #서평단 #측백나무성의라푼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 _배명은👸🏻
 
이건 갇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곱 편의 단편은 시대도, 배경도, 등장인물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 이 단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곳에는 언제나 ‘갇힌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디즈니에 나오는 라푼젤은 마녀에 의해 높은 탑에 갇혀 바깥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배명은 작가님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와 라푼젤이 갇힌 탑을 일제강점기의 기차, 귀신이 존재하는 시골 마을, 오래된 아파트의 지하실, 눅눅한 자취방과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시골의 붉은 벽돌집으로 다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간의 고립과 폐쇄성을 통해 혐오와 억압으로 인한 공포를 그려낸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갇혀 살아간다.
 
 억압적인 가정에, 다정했다는 이유로 더욱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에, 죄책감과 깊은 우울에, 실패의 좌절에, 소외를 만들어내는 사회에,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관습에 갇힌다. 심지어는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과 신념 속에 갇히기도 한다.

이 책에서 공포는 바로 그 ‘갇힘’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무엇에 갇혔으며, 어떻게 벗어나는가?
 
「모자 장수와 나」의 아리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할머니를 잃은 기억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붙잡혀 있었지만 모자 장수의 도움으로 한 번 더 살아갈 기회를 얻고, 다른 생명을 구해주며 그 기억에서 벗어나려 한다.
 
「1월 16일생」의 동생은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남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갇혀 살다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벗어난다.
 
「결계의 방」에서는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둔 무당과 그 공간에 들어온 여자를 통해  다른 형태의 ‘갇힘’을 보여준다. 자신이 벗어나는 대신 다른 사람을 가둬놓는 것은 혐오와 억압이 또다른 고립과 억압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벌레 대왕」에서는 소외된 인간의 적의가 흉측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한밤중 여성을 노리고 역겨운 짓을 하려던 남성은 여성에게 벌레를 옮겨받아 자신이 가하려던 폭력을 되돌려받게 된다. 그 남자는 벌레를 자신의 적의마냥 세상 사람들에게 뿌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 단편에서 무섭다고 느낀 것은 벌레로 인한 펜데믹 상황보다, 한 인간 안에 갇힌 어마무시한 적의이자, 사회에서 소외되었는지와 별개로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갇힐 수 있는 약자의 위치였다.
 
「나를 부르는 소리」의 여자는 동거하는 남자의 폭력에 갇혀 있지만 죽은 뒤에 인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공포를 줌으로써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옥죄었던 두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준다.
 
표제작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의 지수도 교수이자 아버지에 의해 집에 갇혀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려, 결국 사랑하는 여자친구인 도희가 그녀를 구출할 수 있게 한다.
 
「매혹」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내가 신비로운 존재인 천녀의 도움으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갇힘과 벗어남

갇히는 것은 너무나 쉽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두려움과 죄책감, 상실과 후회, 폭력과 억압을 하나씩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갇혀있는 상황까지 호러소설이던 이 책은, 벗어나고자 노력하기 시작할 때 더 이상 장르가 호러가 아니게 된다. 그저 살아남는 것,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그린 이야기.

나는 호러소설이 단지 독자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은 공포를 하나의 장르적 장치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갇혀 있는 사람의 공포를 보여주고, 그 사람이 벗어나려는 순간까지를 그려낸다. 그래서 그런지 이 단편에서 주는 공포의 끝에는 카타르시스가 남는다.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라푼젤이 스스로 탑을 나온 것처럼, 책 속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발버둥치고 달려나가 현실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길.
 
여자들이 달려간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과 후회를 뒤로하고서.

억압하는 세계의 바깥으로.

처연한 슬픔 끝에서 핏방울처럼 피어나는 배명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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