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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평점 :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으나, 읽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했고, 분노하다 결국은 마음이 아려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시설이 고작 30여년 전, 전국에 버젓이 존재했고, 이에 대한 법적 수사는 형식적인 것에 그친 이 안타까운 사건을 나는 왜 이제서야, 그것도 뉴스가 아닌 소설로 접하게 된걸까. 그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사회 하층민이었던 수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린 사람은 없었다.
길의 걸인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잡아들일 수 있는 내무부 훈령 410호, 심지어 잡혀온 사람들 중 70%는 그냥 일반 사람들인, 아니 그냥 사람을 국가에서 마음대로 치우는 이 행위가 용납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주인공 준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해서, 차마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알게 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이 제대로 된 처벌과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현실 뒤에는, 치부를 들어내고 싶지 않아하는 국가 권력과, 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보통 사람들이 있었다. 미연으로 대표되는 피해자들의 삶은 형제의집 감금 사건으로부터 단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살아왔으니, 이제 부터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말은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다.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잊혀 지고만 사건은 미연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망각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방인곤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사람을 사유재산으로, 숫자로 여기고 수 많은 폭력,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형제의집 사건의 실질적인 가해자는 노년에 치매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하루 하루를 속편하게 독서를 하며 보내고 있다. 미연과 준이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지만, 기억나지 않은 일을 어떻게 사과하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던 그의 모습 앞에서 미연은 그저 주먹을 꽉 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망각이라는 폭력을 행함으로써 형제의집 사건과 같은 인권 유린이, 복지시설을 내새운 돈벌이가 반복되고, 주된 피해자인 사회 하층민들은 이 폭력을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한다. 사회적 비극을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서 우리는 어제로 부터 한 걸음 겨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