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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법륜 18
비구 보디 지음, 전병재 옮김 / 고요한소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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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다른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하나의 번뇌,
모든 번뇌를 자리 잡게 하는 하나의 뿌리가 있다고 가르치신다. 이 뿌리가 무명(無明 avijja)이다.4) 무명은 단순한 지식의 부재, 특정 정보에 대한 앎의 결여가 아니다.
세부적 지식을 아무리 많이 축적해도 무명은 여전히 건재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럴수록 더 무섭게 약삭빨라지고 빈틈없게 된다. 고의 근원적 뿌리라 할 때의 무명은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근원적 어둠을 말한다. 어떤 때는 무명은 단순히 올바른 이해를 흐리게 만드는 소극적 태도를 연출하다가 어떤 때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고 나온다. 큰 사기꾼이 되어 수없이 왜곡된 지각(perceptions)와 개념(conceptions)들을 그려낸다. 그러면 마음은 자기자신의 현혹된 미망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줄은 모르고 그것들을 세상의 속성으로 이해해 버린다.


 4) 무명(無明)은 사실상 불선근(不善根)인 치암(暗 moha)과 본질적
‘으로 동일하다. 그래서 부처님도 심리학적 문맥에서 정신적 요인에 관해 말씀할 때는 대체로 ‘치암(moha)‘이라는 용어를 쓰시고 윤회의 인과적 근거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무명(avijja)‘ 이라는용어를 쓰신다. (이상은 저자의 주석)[역주] 그러나 경에는 무명(無明)은 대미망(大迷妄)이다(avijjamahamoha)라는 구절도 나오기 때문에 이 말씀이 적시하는 바를 음미해 볼 필요도 있겠다. (숫따니빠따》 3품 12경 730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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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디‘는 오로지 선(善)한 면에서의 한 점을 겨냥하고 있음, 선한 마음상태에서의 집중인 것이다. 그런 경우 중에서도 다시 그 폭은 더욱 좁아진다. 선한 집중이라 해서 모두 사마디‘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더 높은, 보다 더 순수한 알아차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적인 시도의 결과로 생겨난 집중의 강화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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