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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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지음 / 흐름 출판

[ 라틴어 수업 ] 첫번째 편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 이야기의 두번째 시리즈가 나왔다고 했을때 가제본이라도 빨리 읽어보고 싶어 맘이 급했다. 지금 내가 읽은 책은 겨우 79페이지만 발췌한 일부이지만, 우리가 왜 믿음에 매달릴수 밖에 없는지 그래서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인 지금도 신을 믿는 인구가 많다는것은 종교가 분명 미약한 인간에게 어떤 강력한 힘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의 인구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통계는 있지만 , 여전히 굳건한 그들의 믿음을 볼때면 그들이 신에게서 바라는것 또는 신으로부터 느끼는 메시지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긴 했다.

인간은 너무도 불완전하기에 어쩌면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방황하던 시절 날 이끌어줄 누군가가 간절했던 것처럼 , 믿음 또한 좋은 멘토가 되줄수도 있다는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극단으로 자꾸 변질되가는 일부 종교인을 볼때면 그들이 진정 믿음을 통해 얻고자 하는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종교의 목적과 부합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 (기독교) ,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70년이 넘게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714km에 달하는 새로 생긴 분리장벽. 똑같은 조상 아브라함을 믿는 각기 다른 종교가 자꾸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종교가 또다시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으니 말이다 . 같은 한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갈수록 서로 다른 점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같지?. 그들이 각자 지키고자 한 그 믿음이 정말 신의 뜻에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 종교의 이유로 시작된 내분이니 종교의 이유로 봉합될수 있길 바래본다. 모순되게도 '종교'의 이름으로 다시금 '희망'을 간절히 외치고 있는 나를 본다.

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전 , 나 자신을 아는것부터 우선되야 하지 않을까 . 내가 제일 잘났어 가 아니고 나는 이런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 다른 이들도 각자의 불완전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것...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종교가 되어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것을 인정할수 있으면 좋겠다. 난민이 된 사람들을 모른척하지 않기, 기아에, 질병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모른척하지 않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른척하지 않기. 종교가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기.. 외형적인 웅장함과 화려함은 분명 더해진것 같은데 믿음의 성숙함도 성장한것인지 진정 묻고 싶다

어릴적 내 기도는 항상 뭔가를 해달라고 떼쓰는 내용이었다. 갖고 싶은걸 갖게 해달라거나,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니 되게 해달라거나 그런거 말이다. 어른이 된 나의 기도 내용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나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내용투성이다. 나의 욕망으로 꽉꽉 채워진 기도가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인류와 평생을 함께 해온 다양한 종교와 종교건물들....정치속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살아남아 전수되었는지 조금더 진지하게 알고싶어졌다. 가제본이 아닌 전부를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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