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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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했던 한 인물의 이야기가 실제와 허구의 섬세한 조합으로 재탄생하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허초희' 라는 한 여인의 삶이 내 심장을 후벼 파고 내 날개쭉지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한글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글자였는지...한글이 이렇게도 슬픈 힘을 가진 글자였는지...이 작가님의 책은 처음인데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리고 처연하리만치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할수 있을까.

천재로 태어난 여류 시인...시대를 앞서 태어난 탓에 그 천재성을 속으로 삼키며 살아야 했던 여인..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난초향기가 풍겨오는듯 했다. 슬프면서도 청초하고 단아하면서도 의연한 그녀의 천상의 모습이 수백번도 내게 왔다 갔다. 원망스러움이 뼈에 사무친다면서도 그 또한 모두 내려놓고 아무런 결박도 없이 결국 초연히 떠난 젊디 젊은 스물일곱의 난설헌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단지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다는걸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했지만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이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 될수 있는 순간은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공허하고 무서웠다. 한 사회의 구조가 , 문화가 , 고리타분한 관습과 열등감이 천재 아티스트를 죽인것 같아 몸이 바르르 떨린다.

우유부단한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열등감에 사로잡혀 모든 일의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시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최순치가 서자가 아니어서 난설헌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계속 이어갈수만 있었다면..이 중 단 한개라도 예외였더라면 어땠을까. 이 중 단 한개라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조금 덜 슬프고 조금덜 가슴아픈 시를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생은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기에,

그 긴 노정 속에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순간,

생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그건 이미 생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하셨어.

조선의 아낙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버티고 참아내야 했을까. 첩의 인생을 견뎌낸 난설헌의 어머니 김씨의 삶도 , 허봉을 사모하는 기생 수연의 삶도, 난설헌의 영혼과 너무나 닮은 영암댁의 삶도, 양반 남자에게 인생을 바친 달이나 금실이의 삶도 하나같이 마음이 간다. 그 세월 어찌 감내하며 살았을까 .

그 어느것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가슴속에 더 큰 칼을 품으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와 감정들의 세밀한 흐름덕에 푹 빠져 몇일을 헤어나오질 못했는데 이제는 난설헌을 의연하게 보내줄때가 온것 같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늘 자유롭기를 바랬던 그녀의 영혼을 닮고 싶다. 그녀의 삶은 시대탓으로 새드엔딩이지만 나의 삶은 조금더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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