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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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볼츠 지음 / 문학과 지성사

 

p 232 . "지금 우리는 예쁠 필요도 , 평범할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없다.

오늘저녁 6학년 2반은 전부 화성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거다 "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문학상 황금연필상과 은손가락상, 독일 청소년문학상 등 유럽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작가 안나 볼츠의 작품. 이런 화려한 수식에 호기심이 생겨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을 다 덮고 날때쯤엔 이런 수식어가 부족하다고 느낄만큼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 !

이야기의 중심에는 열네살의 스벤이라는 남자아이와 6학년 2반 같은 반 친구인 여자아이 파커 그리고 스벤의 도우미견 이자 과거 파커의 애완견이었던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주인공 알레스카가 있다.

스벤의 시선으로...그리고 파커의 시선으로 ...같은 상황을 두가지 시선으로 각각 끌고 가되 이 소설의 말미쯤엔 이 두개의 시선이 만나는 교차점이 생기게 되고 그 교차점은 결국 서로를 이해했음을...서로의 상처가 다시 희망이 됐음을 보여준다.

너무나 쉽고 짧은 문장들 덕분에 우선 이해가 쉽고 빠르다 . 소설임에도 스토리 자체가 허구라는 생각보다는 실제 있었던 어떤 일을 친구를 통해 듣는것 같은 기분이들만큼 구성과 스토리자체가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

각자가 가진 상처가 버거워 남의 상처따위는 신경쓰지 못하는 평행선이 있다. 스벤은 취미가 뇌전증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 침대 밖 세상에선 늘 화성인 취급당하는 자신때문에 칼날이 서있다. 파커는 도둑이 쏜 총으로 인해 불안전한 사회에 대한 공포심으로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파커는 아끼는 강아지 '알래스카'를 어떤 이유로 다른 가정에 보내게 되고 , 알래스카를 예뻐하지도 않는 아이 스벤의 도우미견으로 스벤의 집으로 가게된걸 알게된다. 알래스카를 너무 그리워하는 파커는 새벽 몰래 스벤의 방으로 잠입하게 되고 이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 너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벌벌 떠는건데? 너는 왜 계속 징징대고, 다른 사람들은 왜 그냥 그러려니 하며 계속 사느냐고 ! " (스벤이 파커에게 하는 말 )

"누군가는 내 발작을 웃기다고 생각하고 촬영했겠지. 재밌으니까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송했겠지. 정신나간 애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어. 거기에선 내가 눈에 띄지 않을거야. 그 학교에서는 구급차와 약, 발작 이런것들이 전부 평범한 일이거든 " ( 파커가 스벤에게 하는 말 )

파커가 스벤과의 우정을 통해 뭘 배웠냐고 묻는다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밖으로 다가갈 용기'라고 말하겠다. 스벤에게 그냥 사물에 지나치지 않았던 알래스카. 하지만 스벤은 발작을 경험하면서 개와 사람간에도 어떤 교감이 실제로도 존재한다는걸 깨닫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이 단지 소설속 설정이 아님을 알것이다. 파커가 알래스카에게 보여준 책임감과 사랑, 따뜻함이 동물학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상에 훈훈함을 전해준다 . 사랑한다는 건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아닐까 ? 파커가 알래스카에게 보여준것도 , 알래스카가 파커가 아닌 아픈 스벤을 선택한 것도 모두다...

이 책에서는 요즘 10대들의 '사이버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발작을 일으키는 스벤의 모습을 재미삼아 핸드폰으로 퍼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그리고 곧 SNS 는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 상처를 가장 빠르게 봉합시킬수 있는 존재라는 걸..무시할수 없는 그 힘을 경험한다. 상처받은 스벤을 위해 6학년 2반 전체가 자신의 약점이자 비밀일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영상으로 공유하는 모습을 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처를 주지 않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 별 의도 없이, 재미삼아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올해 갓 10대에 진입한 우리아이들에게도 잔소리처럼 되풀이하게 된다. 상처를 안주고 살순 없겠지만 치유해주는것도 니가 책임질 몫이라고..우리는 각자가 다 소중한 나약한 존재들이라고..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잘 모르는 타인에게 내 상처를 내보이는건 내키지 않는다. 모르는 타인이 우연히 내 상처를 알게되는 일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스벤과 파커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필요하다. 특별히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 과장하지 않아도 , 일방적으로 배려하고 희생하지 않아도 좋다. 상처받은 밖앗세상을 피해 침대속으로 달아났던 스벤이 파커를 위해 용기를 냈던 것처럼, 상처가 당연한 세상에서 필요한건 우선 침대밖으로 나설 용기를 내 보는 일인지도. 비록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침대밖으로 나오라고 , 부딪히면서 살아있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외치는 작가의 응원에 또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파커는 또 세상을 향해 외친다. 걷지 못하는 학생이 학교에 휠체어를 타고 올 수 있는 것처럼, 스벤 역시 도우미견과 함께 등교해도 되지 않냐고, 발작을 미리 예견할수 있는 알래스카를 옆에 두고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수만 있다면 스벤은 지금처럼 공포스러운 세상에 살지 않아도 된다고. 스벤도 우리와 똑같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아이라고.

약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사회체계가, 전문가들이 그들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을거라고. 그들은 전문가들이니 오죽 잘하고 있지 않겠냐고 . 나는 뭘 변화시킬만한 힘이 없다고.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눈물흘리는 일말고는 내가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노라고. 파커는 달랐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줬으며 결국 교장선생님과 친구들의 허락을 얻어서 스벤이 세상밖으로 다시 나오게 만든 파커 !. 스벤에게 이보다 더 힘이 되는 선물이 있을까 ? ! 그 순간 스벤에게 필요한건 효과가 뛰어난 강력한 약도, 실력있는 의사도 ,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친절한 부모도 아니었다는걸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발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교생활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던 스벤에게 필요한건 , 발작을 미리 알아챌줄 아는 알래스카를 곁에 두는것이었다. 열네살의 깡마른 파커는 진짜로 스벤에게 필요한걸 내어준 사람이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선물할때 내가 필요한걸 주는지 아니면 정말 그 사람이 필요한걸 주는지 생각해볼 일이다...나는 어느쪽에 가까울까 ?

우리는 약하기도 하고 동시에 또한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인생이 바뀌는 매직과도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상처에 매몰되 안전한 침실에서 살아갈지, 아니면 상처받더라도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을 읽고난후 더 선명해졌다. 내가 어느쪽에 더 서고 싶은지.......나도 파커처럼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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