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전쟁과 평화
이리에 아키라 지음 / 을유문화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교수님의 소개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어렵다는 애기를 들었지만 막상 읽어 보니 그렇게 어려울거라고 생각하지 않던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회독 이후에 다시 읽을 때는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으며 역사의 사명이자 책무인 현재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등불이 되어 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1장-9장까지 이루어진 책으로서 전쟁의 세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전쟁과 중요한 전쟁인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20세기의 전쟁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21세기를 나아갈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와 평화를 영구히 지속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내가 항상 역사를 배울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당하기만 한 수난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조국에 태어난 것에 대한 분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언제나 강대국의 틈 바구니 속에서 눈치만 봐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속에서 이 책은 나에게 더 넓은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 처음 언급한 권력과 문화의 관계는 이 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권력과 문화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시에는 서로 배타적이만 전쟁이 나게되면 권력과 문화는 일시적인 대립을 중지하고 하나로 단합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비스마르크의 고전적 권력정치 사고가 일반적 전쟁론으로 인정되고 있을 때는 근대국가가 성립하고  국민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연히 이 당시 국가권력의 힘은 막강한 것이였고, 국가권력의 상충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식민지 건설과 더불어 필연적인 충돌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권력간의 상호동맹체제로의 전환은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국지전이 아닌 세계전으로 바뀌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산업혁명의 발발로 원료의 공급지와 포화된 국내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발달이 제국주의로 가게 되는 과정은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점점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애국주의는 호전론으로 발전하기 쉬었고 이 또한 전쟁의 잠재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당시 권력은 문화보다 우위에 있었고 근대국가의 문화라는 것 자체도 많은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지금 받아 들여서 생활화하고 있는 많은 산업화과정에서 발명된 도구는 근대문화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는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을 뺴앗아 갈 정도로 폭력적이며 근대문명의 또 하나의 대표적인 발명품인 콘크리트는 네모난 사각형의 모형으로서 부드러운 곡선이 아닌 합리적이지만 날카롭고 단석적인 문화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포화상태로 인한 폭발성과 근대문화의 폭력성 그리고 근대국가의 애국주의등이 전쟁의 발발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전쟁에 대한 희망과 전쟁에 대한 찬미를 그치고 전쟁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아보고자 하였으며 전쟁의 반대어로 평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하며 그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진지하게 묻게 된다. 우리 나라처럼 휴전관계에 있고 북한군의 남침에 대한 야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앞으로의 평화수호와 전쟁론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실로 값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의 주원인으로 세력균형외교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념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된다. 따라서 많은 다양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대두되게 된다. 스펜서식 이념인 경제의 발달을 통한 국제화된 경제가 되어 모두가 순치의 관계가 되면 평화는 유지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 이념은 소련 공산주의의 이념과 상충되지도 않았으므로 이 당시 상당한 주목을 끌게 된다. 따라서 1차 대전이 끝난 후 일반론으로 대두 되었다. 또한 문화적인 교류를 통한 평화의 기반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속에서 자칭 지식인들조차 국가의 하수인이 되어 내셔널리즘의 영향으로 왜곡되어 버렸다고 반성하며 문화적 국제주의를 평화의 기반으로 하고자 했었던 흐름도 있었다. 문화적 교류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문화적 교류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인데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서양문화에 많은 의식주가 변해버렸지만 그런 일반적인 면과 다른 특수적인면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 의한 문화적 교류는 자칫 반동세력의 반 미국세력을 결성하여 평화를 유지하기 힘들게 할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평화관의 확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로서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새로운 평화적인 방법론들의 무용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겠다. 반평화주의와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걸고 항시 전쟁태세로 준비하고 있는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껏 평화적으로 현상유지되고 있던 이 세계를 타파하는 것이 독일과 이탈리아의 주 목적으로 성립되었으며, 뒤 이어 경제적 자급자족을 목표로 현상 타파를 원하는 일본의 전체주의가 형성되면서 또 다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자들과 그 질서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들 간에 긴장감과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었다. 처음에 이야기한것처럼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론이 힘의 균형에 의한 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 즉 개인을 국가 권력에 예속시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파시즘과 나치즘등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자유주의와 합리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쟁에 이기기위해서는 힘의 결집 즉 문화보다 앞선 권력으로의 회귀에 대한 불가피성이 일반론으로 대두되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들이나 그 반대 자유진영이나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전쟁의 발발전에 문화는 권력과의 융합을 통해 다시 한번 애국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진주만 습격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또 다시 엄청난 재앙과 사상자를 양산하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사를 읽으면 인간이 합리적인 것을 스스로 믿고 있자만 얼마나 감정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단순한지를 느끼게 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란 지나친 애국심의 발로로 무수한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제 2차 세계대전은 평화수호를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두 진영의 명분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평화를 그 당시 사람들도 알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시대 흐름을 따라 그 당시 일반론으로 대두된 평화론을 살펴보면 정-반-합의 나선형식 진보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주의에 물든 권력구조에서 1차 세계대전을 겪고 스펜서식 경제적 자본주의가 일반적으로 바뀌었고 다시 2차대전을 겪으면서 힘의 원리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는 이루어 질거라는 비스마르크식 질서를 추구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진보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제연합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통해 국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후진국의 경제적 지원등을 통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며 그럼으로써 비스마르크식 위태로운 힘의 균형에서 더 나은 힘의 균형관계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또 다시 소련 공산주의 진영과 미국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그 동안 미국과 소련의 평화에 대한 기본 방침의 유사성에 묶여 있던 두 체제는 또 다시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이 되게 된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공존이냐 파멸이냐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게 되었으므로 평화공존을 위해서 두 진영은 전쟁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평화공존론은 미, 소 두 진영사이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제3세계를 어떻게 국제 질서에 편입시키는가는 큰 문제로 남게 되었다. 그 한 예로 미국은 세계 경찰의 임무를 띠고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게 되지만 제 3세계를 바로 잡으려는 미국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1990년 미국의 냉전의 종식을 통해 그동안 대립하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진영의 대립은 막을 내리고 세계인들은 항구적 평화가 지속되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무수한 많은 민족이 있는 제3세계와 다민족국가에서는 테러라는 새로운 이념이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20세기 전쟁의 세기가 끝나고 21세기 평화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라크 전쟁과 같이 국지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하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민족투쟁의 전쟁 가능성도 중국이나 중동지방 그리고 제3세계에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평화라는 것은 전쟁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 지켜야 할 우리의 책무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냉전의 상처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됐다. 아직도 휴전선의 철책으로 맞서고 있는 우리에게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에서 배운 다양한 평화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력균형에 의한 힘의 논리에 의한 현실주의에 의한 평화론도 실천하며 우리가 대표를 뽑을때 평화를 지킬수 있는 외교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대표를 뽑아야 하며, 경제교류를 통해 상호의존도를 높이는 스펜서식 평화론에 입각하여 폐쇄적인 경제를 추구하는 북한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하고 남한과 북한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북한의 세계로의 개방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문화교류를 통한 단절된 기간동안 이질화된 문화를 민족고유문화의 동질성을 유지토록 하여 전쟁 재발을 방지하여야겠으며, 비정부단체들(ngo)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북한과 남한의 민간주도의 교류확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얼마전 빨갱이로 몰려서 고생을 한 모 교수의 일이 생기는 세태에서 아직도 반공과 사상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우리사회라면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등과 같은 모 대학생들의 행동은 평화가 지켜지기 위해 아직도 현실은 힘의 논리 즉 권력에 대한 정치구조가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양심적으로 병역을 떳떳하게 하고 나온 대한민국 대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오늘날 평화가 지켜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끊이지 않는 국지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21세기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국지전이 제 3차 세계대전으로 이루어져 지구 멸망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쓰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20세기의 아픈 전쟁을 겪고 배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에 따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전쟁이라는 단어가 사라 질 그 날을 기약하며 끝으로 오랜만에 어렵지만 좋은 책을 끝까지 읽게 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마무리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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