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릿 2 비꽃 세계 고전문학 28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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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높은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백발 신사가 가슴을 부풀리는게, 자신을 게으르고 불쌍한 놈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는 것에 반발하는듯하더니, 화가 여행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은 어디서든 지도자로 활약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표정으로 근엄하게 입을열었다. 겨우내 여기에 있으면 지루하겠다는 의견을 묵직하게 내뱉은것이다.
수사신부는 약간 따분하다는 걸 무슈에게 인정했다. 공기는 희박해서 충분히 오랫동안 잇따라 빨아들여야 하고, 추위는 모질다. 그걸 견디려면 젊고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은 젊고 튼튼하니, 하늘에서 내리는 은총을...... - P23

"네, 훌륭하군요. 하지만 갇혀서 지내야 하지요"라고 백발 신사가끼어들고 수사신부는 계속 말했다.
날씨가 아무리 험악해도 바깥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날이 많다. 조그만 길을 내서 운동하는 전통이 있다. - P23

"하지만 공간이 너무 작아요. 너무나 - 하 - 비좁아요."
둘러볼 피난처가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곳으로 가는 길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무슈는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무슈는 여전히 강조한다. 공간이 너무 - 하 - 으흠 - 비좁다. 게다가 하루하루가 늘 똑같다. 늘 똑같다.
수사신부는 그렇지 않다는 미소를 머금으며 어깨를 가만히 으쓱하다 가만히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자기 관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슈도, 자신도, 이곳의 초라한 삶을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무슈는 갇혀 사는 데 익숙하지않다. - P24

무슈는 영국인 여행자로, 쾌적하게 여행할 수단이 가득하다. 재산도 많고 마차도 많고 하인도……………
"완벽하지요, 완벽해. 당연히."
백발 신사가 대답하자, 수사신부가 다시 말했다.
무슈는 ‘내일 여기에 갈까, 다음날 저기에 갈까, 이 장벽을 넘을까,
저 경계를 넓힐까‘를 선택할 권한이 없는 처지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없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마음이 효율적으로 적응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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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머무는 곳은 어디나 그러듯, 휠체어 역시 추억과 공상이 깃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걸 조금도 고려하지 않아, 황량한 거리와 황폐한 풍경은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예전에 본 모습 그대로며, 사람도 예전 모습 그대로니, 울적한 나날을 판에 박힌 듯 오랫동안 보내다 보면 예전 모습을 수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이 시간에서 벗어날 때 바삐 움직이던 시계가 멈춘다고, 우리 자신이 꼼짝을 못하게 되었을 때 인류 전체가 꼼짝을 못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자신이 위축되어 잔뜩 쪼그라든 기준으로 주변을 획일적으로 판단하는것은, 훨씬 커다란 기준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판단할 수 없게되는 것은 꼼짝을 못 하는 환자가 대체로 겪은 육체적 한계며, 속세를벗어난 사람이 대체로 겪은 정신적 한계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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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글스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고, 클레넘은 혼자 남았다. 달빛을 평화롭게 받으며 강변을 삼십 분 정도 거닐 즈음에는 가슴에 손을 올려서 장미 다발을 가만히 꺼냈다. 가슴에 댈 수도 있고 입술에 댈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강물 옆에 꾸부리고 앉아서 그것을 가만히 띄워 보냈다는 사실이다. 장미는 창백하면서도 초현실적인 달빛을 받으며 강물에 둥둥 떠갔다.
클레넘이 들어오니 집 안은 불빛이 환하고 얼굴마다 불빛이 번뜩여, 클레넘 얼굴에도 쾌활한 기색이 빠르게 어렸다. 그들은 (클레넘 동업자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준비한 건 처음이니)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다, 침실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장미꽃은 창백하면서도 초현실적인 달빛을 받으며 둥둥 떠가듯, 한때 우리네 가슴에 품고 소중하게 간직하던 대상도 우리 곁을 떠나 영원한 바다로 둥둥 떠간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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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클레넘은 죽어가는 불길 앞에 앉아, 자신이 그날 밤까지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슬퍼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날 밤까지 걸어온길에 독을 뿌리지는 않았다. 자신은 지금껏 너무 많은 것을 놓쳐, 인생의 뒤안길을 격려하며 함께 걸어갈 지팡이를 이 나이에 비로소 사방을 둘러보며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클레넘은 활활 타는 모습이 사라지고, 남은 불빛조차 줄어들다 하얀 재로 변해, 먼지로 떨어지는 벽난로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곧 저렇게 사라지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니, 열매가 맺고 꽃이 피는 생나무를 타고 내려와서 나뭇가지가 모두 시들어 하나씩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어릴 적에 불행하게 억눌릴 때부터, 사랑은 없고 엄격하기만 한가정을 거쳐, 다른 나라로 도망치다 오랜만에 돌아오고, 어머니를 만나고, 오늘 불쌍한 플로라를 만날 때까지, 내가 찾아낸 게 뭐지!"
클레넘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방문이 살그머니열리면서 들려오는 말에 클레넘은 화들짝 놀랐다.
"작은 도릿이요." - P248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과 나룻배는 그걸 바라보는 사람 모두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것 같았다. 젊든 늙든, 열정이 가득하든 차분하든, 불만이 많든 적든, 너희는 늘 강물처럼 흘러라. 가슴이 불협화음으로 가득 부풀어오르게, 그래서 잔물결이 늘 똑같은 가락으로 나룻배 뱃머리에 출렁이게 하라. 해마다 수많은 배가 떠가고 강물이 수없이 흐르고, 여기에 골풀을 저기에 백합을 피우며, 무엇하나 애매하거나 불안한 것 없이 지금도 강물이 꾸준히 흐르는데, 너희는 시간에 쫓겨서 너무나 산만하고 변덕스럽게 사는구나.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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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어린 나이에 아빠한테서, 언니한테서, 오빠한테서, 감옥에서 애처로운 시선으로 무얼 보았을까? 비참한 진실을 여자애한테 많이 보여주는 게, 혹은 적게 보여주는 게, 그래서 수수께끼처럼 숨기는 게 하느님 뜻에 합당할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자애가 다른 모든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영감을 받았다는 거로 충분하다. 영감을 받았다고? 그렇다. 시인이나 사제가 받는 영감은 있어도, 가장 비천한 곳에서 가장 비천한 일에 열중하자는, 사랑하고 헌신하자는 영감은 있으면 안 된단 말인가!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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