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 - 전설로 남은 한국 영화의 풍운아 아이세움 역사 인물 25
서경석 지음, 금정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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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하면 떠오르는 조선 최고의 영화인 나운규!!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영화인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을 한다.

영화 아리랑의 필름은 일제강점기 시대때 불태워 없어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운규에 대해서

들은게 그게 전부였다.

영화 필름을 태우면 특이한 금속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보물과도 같은 민족의 이야기인

아리랑 필름을 태웠다는 이야기에 가슴속 깊이 일제의 만행에 욱하게 됐었다.

 

이번에 전설로 남은 한국 영화의 풍운아 나운규를 통해서 제대로 된 인간 나운규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가 됐다.

나운규가 아리랑의 주인공까지 했다는 사실에 난 정말 깜짝 놀라게 됐다.

내가 그동안 학교에서 뭘 배웠던거였지,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운규는 영화 감독이기전에 영화배우이며 각본과 각색까지 모두 하는 전천후 엔터테이먼트였다.

 

내 아이만큼은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춘 책의 내용에 따라 올바른 정보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의 이야기는 역사를 만든 인간의 기록 :

아이세움 역사인물에 들어있는 책이다.

그중 한국편에 의외의 인물인 나운규의 등장에 이유가 뭔지 생각하게 했다.

김옥균, 김정호, 세종, 정약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나운규의 이름을 보게 된다.

 

아이세움 역사 인물은 세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국내의 인물의 행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인물이야기이다.

당대의 시대상에 엮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계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인것 같다.

인물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와 나아가 세계 역사의 흐름까지 볼 수 있게 책을 구성했기 때문일것 같다.

 

역사적 관점으로 본 나운규는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요,

민족의 아픔을 하나로 묶은 조선 최고의 영화인이라는 말이 따라붙게 된다.

 

 

 

 

 

 

 

 

영화 <아리랑>에서 주연, 각본, 각색, 감독 1인 4역을 맡아,

무명배우에서 일약 조선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된 나운규이다.

 

나운규는 영화 안에 민요 <아리랑>을 넣어 온 겨레를 하나로 묶어냈다.

초창기 우리나라 영화판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영화 아리랑을 민족 영화의 이정표가 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전설이 된것 같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예전 아리랑을 상영하던 당시엔 배우가 대사를 더빙을 하는게 아니라,

변사가 극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던 시대였다.

일본의 순사가 없을때, 변사는 '만세 운동의 고문으로 미치광이가 된 영진'으로 해설해 조선인

관객들의 민족의식을 건드렸다고 한다.

 

그러면 영화를 보던 관중들은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변사의 해설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했다고 한다.

 

 

 

 

 

 

 

 

변사의 목소리가 어느덧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우십니까. 나는 죽었던 사람입니다. 웃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작별하는 저를 기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우시는 것을 보면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늘 불렀다는 노래를 부르면서 기쁘게 작별합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극장안의 사람들은 목이 메였지만, 변사를 따라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책속엔 영화인 나운규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위인전에 맞게

나운규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놓고 있다.

위에 형들의 이야기와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나운규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나운규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중 본인의 꿈을 발견하게 되서 영화인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명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25살의 나이에 아리랑을 통해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당대의 최고의 영화인으로 우뚝 서게

됐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완벽한 스타탄생을 알리는 이야기가 될것 같다.

 

 

 

 


 



감독 나운규의 모습 뿐만 아니라 배우 나운규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작달막한 키, 똥똥한 몸집, 시커멓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다른 영화 관계자들에게

배우는 어림없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도 남자배우들의 외모를 많이 따진것 같아서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2014년 지금 시대에서 본 나운규의 모습은 개성이 강한 얼굴이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멋진것 같은데,

그 당시엔 별루인 얼굴이라고 해서 웃음짓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얼굴과 달리 연기를 잘하면 이렇게 주인공을 할 수 있고, 연기파 배우로

칭송을 받게 되는것 같다.

실력이 곧 성공인게 시대를 막론하고 일맥상통한 결과인것 같다.


 

 

 

 

 

 

 

나운규는 민족정신과 자유로운 예술혼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각본가이자 감독,

그리고 배우였으며, 초창기 우리 영화를 이끈 선구자였다.

 

처음에 나운규라는 인물이 아이세움 역사인물에서 세종과 정양용 등과 나란히 이름이

올려 있어서 의아해했는데, 나운규는 충분히 이름을 올린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제의 검열로 완성된 작품에 3분의 1 이상을 가위질을 당해야 하는 시대에

<아리랑>과 같은 민족의 아픔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낸 나운규는

영화계의 전설이었다.

 

매주 아이와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이렇게 초창기 영화인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발전했다는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힘든 시절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신념을 담아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데,

감사한 마음을 담아본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부터 조선의 작은 나라에는 인재가 참 많았다고 한다.

그걸 시샘한 일제가 우리나라를 쳐들어 와서 씨를 말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많던 나라였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우리 어린이들도

역사적 인물을 통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워 나가는 재미에 빠져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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