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곰 한 마리씩은 있지 않나요?-
<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베크만 지음, 다산책방
김은희
이번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게 느껴졌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기온차로 인해 방울방울 맺힌 유리창의 물방울을 보면서 ‘그래, 겨울이지.’ 혼자 중얼거리는. <우리와
당신들>의 배경은 일년에 겨울이 9개월인 베어타운이다. 관광지도, 대규모 산업단지도 아닌 작은 마을에 유일한 이슈는 아이스하키. 페테르 안데르손은 이 마을 출신으로 캐나다 프로 리그까지 진출한 적 있었고,
쓰러져가는 청소년 하키팀을 전국 결승까지 올려놓은 유능한 단장이다. 만약 청소년 팀이 우승만
하게 된다면 이를 계기로 마을을 하키특성화 고장으로 만들고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단장의
딸 마야가 베어타운 가장 유능한 선수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결승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케빈은
경찰에 체포된다. 케빈이 없는 베어타운팀은 결국 우승하지 못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베어타운 사람들 중
일부가 페테르를 단장직에서 끌어내리려 갖은 수를 쓴다. 다행히(?) 이
시도는 마을의 검은 재킷 ‘그 일당’의 영향력으로 무산되고
케빈은 마을을 떠나게 되는 내용이 <베어타운>의
줄거리다. 장황하게 <베어타운>의 이야기를 되짚는 이유는 <우리와 당신들>은 그 후속작이기 때문.
기대대로라면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마야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앞장서고 서로 보듬고 함께 희망을 향해 나가야 마땅하지만 <우리와 당신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마을은 점점 더 침체되고 마야는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지역 의회에서는
베어타운 하키팀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 하고 페테르는 답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와중에 새로운 인물 ‘리샤르드
테오’가 등장한다. 그는 지역에서 주목받지 못한 정치인이었으나
목표를 세웠다. 추후 선거가 있다면 자신이 제 1당의 수장이
되기로,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조사하고 하나씩 실행한다.
절대 정치와 결부되어서도 안되고 결부 될 수도 없다고 믿었던 스포츠가 외부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 지 소설을 읽을수록 소름끼치게
알게 된다. 나 자신은 결코 정치인이 될 수 없겠다는 자각과 함께. 아무튼
베어타운은 다시 한번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선다. 바깥으로는 같은 지역이자 가장 치열한 경쟁상대인 헤드팀을
물리쳐야 한다. 안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뒤섞여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는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검은 재킷 ‘그 일당’의 도움으로 단장직을 유지한 페테르는 이제 그들과 척을 져야 하는 위험천만한 시도를 앞두고 있다. 과연 ‘베어타운’ 아이스하키팀은 이 모든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이스하키 경기를 본 경험이라고는 영화 <국가대표2>가 고작이다.
실제 경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서 과연 하키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 직업이 보드게임을 가르치고 진행하게 하는 것이기에 잘 안다. 누군가에게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것도
몰입하면 전부가 된다는 것을. 실제 돈도 아닌 토큰을 잃고 따는 보드게임에서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정수리를 때리는 짜릿함을 느낀다. 하물며 하기경기장에서라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맥주를 마시며 같은 팀을 응원하는 그 순간은 몰입과 광기가 하나로 응집된다. 쉽게 흥분하여
폭력까지 행사 되는 아드레날린의 축제가 될 수 있겠지.
상당한 분량에,
등장하는 인물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 싫어질 만큼 작품의 흡입력이 강하다.
조마조마한 마음, 내가 응원하는 그 사람이 골을 넣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제발이지 오해가 풀려서 대화로 일이 해결되길 바라는 천진한 마음이 교차하고,
‘과연 베어타운의 숲속에서 곰들은 지금 겨울잠을 자고 있을까?’ ‘곰이랑 황소가 실제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같은 동심 어린 상상력이 갑자기 솟구치는 소설
<우리와 당신들>.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 봄직하다. 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