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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는 맨부커상을 받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이 있는 영국 소설가다. ‘시대의 소음’은 ‘예감은…’ 이후 5년 만인 2016년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는 평가와 함께 공산주의 독재정권에 영합한 어용 음악가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소설은 쇼스타코비치가 여행 가방을 종아리에 기대 둔 채 초조하게 승강기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탈린 정권의 눈 밖에 난 그는 한밤중에 들이닥치는 비밀경찰에 가족 앞에서 잠옷 바람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서 있는 참이다.
소설의 1, 2, 3장은 각각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소비에트 국가로부터 환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소설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열아홉 살에 쓴 첫 교향곡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듭하다가 스탈린 앞에서 연주 실수를 한 탓에 음악을 금지당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소비에트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에서 자신의 우상인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를 비판하게 된다. 이후 스탈린의 부름으로 명예를 회복하지만 원치 않았음에도 공산당 가입을 강요당한다.
노년이 된 쇼스타코비치는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쇼스타코비치를 일신의 안전을 위해 체제와 타협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한 인물로 그린다.
쇼스타코비치가 권력층으로부터 숱하게 들어야 했던 “음악은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에 작가는 소설 말머리에서 스스로 답한다. “음악은 결국 음악의 것이다”라고. 역사의 시끄러운 소음 아래 용기와 비겁함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인간을 시적으로 탁월하게 그려냈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 전까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던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