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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톰 스웨터리치의 <사라진 세계>를 읽었다. 해군우주사령부(NSC)에서 극비리에 개발된 시간 여행 도중, 미래로 간 초기 탐사선들은 “터미너스”라고 명명된 지구 종말을 목격하게 된다. 미래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갈 때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탐사선들은 갈 때마다 현재와 점점 가까운 시점에서 터미너스를 목격한다. 터미너스가 오면 지구 근처에 화이트홀이 생기고, 사람들은 QTN입자(Quantum Tunneling Nano Particles) 때문에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죽어간다. 이런 미래를 목격한 관계자들은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탐사선을 미래에 보내며 이 종말을 막을 방법과 만일에 대비해 떠날 다른 우주 공간을 찾는다. 주인공인 섀넌 모스 또한 이 계획의 일부로 훈련생일 동안 터미너스가 일어나는 2199년의 미래 세계로 보내지는데, 이 때 다리 하나를 잘라내어 의족 신세를 지게 된다. 이후 수사관으로 일하던 섀넌은 옛날에 죽은 친구의 집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이 일가족이 시간 여행에 참여했던 대원의 가족이란 것을 알게 되며 수사가 시작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시간 여행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발견하고 이를 막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리 소설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 역시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정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세계 설정과 매력적인 인물을 가진 멋진 소설이다. 



(1) 딱딱 맞아 떨어지는 세계 설정


사실 좋은 타임 워프 소설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SF라는 장르가 실제로 만들어지기 전에 발표된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 머신>이래로,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SF 장르에서 항상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하위 장르인데도 말이다. 사실 타임 워프로 인해 발생하는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사실 타임 워프를 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의 생애기간 동안에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시간 여행으로 인해 뒤틀리게 되는 인과를 정리하는 것은 탄탄한 세계관 설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문제를 나름의 과학적인 배경 설정을 통해 해결해냈다. 


여기서 이용한 시간 여행 개념은 IFF(Inadmissible Future Trajectories), 즉 인정되지 않은 미래 궤적이라는 개념인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해(아마도) 불확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 중 하나의 랜덤한 미래로 웜홀을 통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다만 과거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굳건한 대지(Firm Ground)”라고 불리우는 과거의 일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의 굳건한 대지는 1997이며,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일수에 맞춰 시간 여행을 해야 안정적이라는 설정에 따라 19년(6765일) 뒤인 2015-2016년으로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시간 갭이 작은 이유는 아득한 미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가 아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 때문. 


여기에 더해 중요한 세 가지 설정이 더 있는데, 이는 IFF가 소멸되는 조건과 미래에만 있던 사람이 과거로 돌아올 때 생기는 일, 그리고 시공간 이동이 불안정해지는 지점에 관한 설정이다. 첫째, IFF가 소멸되는 조건은 해당 IFF로 떠난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 때로, 굳건한 대지로 복귀하지 못하고 모두 죽으면 해당 IFF로 갈 수 있는 확률은 0이 되어버린다. 둘째, 반대로 IFF로 갔던 사람들이 굳건한 대지로 돌아올 때, 원래 함께 떠난 사람이 아닌 IFF에서 만난 사람을 데려오면 이 사람은 도플갱어,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메아리는 존재가 된다(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래 세계에서 아주 사라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중첩 얽힘 현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셋째, 이 세계관에서 시공간 이동을 위해서 사용하는 장치는 “브란트-로모나코(B-L)드라이브”라는 장치다. 그런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시공간에 영향을 미쳐서 “브란트-로모나코 시공간 마디”, 혹은 앏은 공간이라고 불리는 지점을 생성한다. 이 마디가 생성된 곳에서는 시공간이 뒤틀리게 되는데, 이는 시공간의 밀도가 변화해서 생기는 필연적인 변화로서 나중에 전개상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튼 이렇게 현대 과학과 여러 시간 여행 관련 개념을 동반한 여러 설정 탓에 종종 머리가 어지럽지만, 중반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이렇게 첩첩이 쌓아온 설정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터져나온다. 마치 초코 생크림인 줄 알고 먹었는데 누텔라더라… 하는 충격적인 풍부함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더해 가게되는 미래마다 만나는 새로운 미래 기술들에 관한 묘사를 읽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가 정말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한 책에 넣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미드로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2) 매력적인 인물


이 책의 주인공인 모스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일단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는 직업 윤리도 그렇고, 사건에 보이는 집중력 또한 대단하다. 게다가 사건 현장을 목격한 일반 사람들에게 다독여주는 자상함까지. 사실 초반 부분에 자신의 수사를 도와준 아르바이트생(히피 대학생)에게 법 집행에 소질이 있으니 대학에 가보라고 조언해주고,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그녀에게 큰일을 해냈다며 앞으로도 꿋꿋하게 이겨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또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사람을 그렇게 다독여 줄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섀넌이 어릴 때 죽은 친구인 코트니는 섀넌의 기억 속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데, 어렸을 때 죽은 친구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것도 멋지고 그럼에도 그 기억들 때문에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계속 다잡는 것도 멋졌다. 


모스 외에도 가족을 사랑하는 브록, 모스의 직속 상관이자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오코너, 괴짜라서 귀여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천재 물리학자 은조쿠, 미래 세계에서 모스와 친해지게 되는 니콜 등등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모든 인물들이 전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있다. 아마 작가의 솜씨 때문이겠지.




초반부에는 읽기 쉽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정말 여러 떡밥 회수와 사건 진행에 감탄하며 휩쓸리듯 읽었다. 좋은 플롯의 여러 요소가 정말 미친듯이 어우러져 들어가 있어서, 소설을 쓰려고 공부용으로 읽어도 좋을 같다. 후속편 안나오나요…?


한순간 모든 존재가 본래 모습을, 숨기고 있던 잔혹한 목적을 드러내는 듯했다.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여러 죽음의 전무가, 그 숨겨져 있던 거대한 아이러니의 패턴이 비로소 드러나는 듯했다. 내가 친구의 이름을 사용해서 친구가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느꼈던 이 모든 비극과 희열의 조화는 나의 좁은 마음으로는 결코 잴 수 없는 거대한 설계의 일부처럼 보였다. 모든 행동과 결과가 고리처럼 얽혀 딱 들어맞는 계획으로 여겨졌다. 한순간 코트니의 죽음이 소름끼칠만큼 확실하게 이해되었으며, 목적과 이유가 명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다시, 맞춰졌다고 생각했던 조각들이 흩어졌다. 거대한 설계 따위는,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코트니의 죽음은 지극히 우발적이고 평범한 것에 불과했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한 사악한 행위였을 뿐이다. 설계 따위는 없다. 우주는 잔혹한 계획을 짜는 존재가 아니다. 우주는 광대하고, 우리의 욕망에 아무 관심도 없다. - P471

어렸을 때 모스는 어머니가 그저 술만 마시는 망가져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녀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성인이 되면 똑같은 수렁에 빠지고,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면 타인의 상처를 더 쉽게 알아보는 법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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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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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정말 매력적. 전반부에서는 세계관과 사건에 익숙해지느라 정신이 없는데, 중반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풍부함이 터져나온다. 미드로 나오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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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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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의 신작이 나오기까지 정말 오래 기다렸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올해 가장 반가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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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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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항상 옳은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당연히 아니라고 말한다. 무한 경쟁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폐해 또한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피로한 경쟁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차가운 경쟁"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미래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것을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진해 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경쟁 자체는 없어서는 안되는 체계이지만, 무작정 한가지 만을 바라보고 패자에게 무자비한 우리 사회의 경쟁 구도는 필연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내가 대학생이기 때문에 교육과 취업에 관한 부분이 많이 와닿았는데, 스위스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 진학률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국가 경쟁력을 갖는다는 부분이나 취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너무 이런 체제에 대한 고민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스위스 사람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말한다. 무작정 경쟁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미있는 경쟁을 말이다. 뉴스 포털이나 SNS에 교육열로 인한 부작용이나 취업과 관련된 힘든 이야기들이 올라오면 공감하고 욕하기에 바쁜 우리들이지만, 정작 그 문제를 발생하게 만든 원인을 분석하고 그걸 실제로 더 좋게 만들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스위스 사람들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무한 경쟁은 모두의 공존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 경쟁이 스위스 사람들의 경우처럼 진짜로 의미가 있고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되려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점들이 너무 깊게 와닿았던 탓인지, 단순히 스위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만 하는 부분에서 수박 겉핥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스위스가 그런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완벽하게 납득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스위스라는 국가의 긍정적인 모습을, 그 사람들이 경쟁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의 경쟁은 어때야 하는지는 독자 개개인의 사유에 맡긴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의 일을 대신 해줄 수 없듯, 책이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또한 작금의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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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역사 속 억압된 책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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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금지된 책을 소유하는 것이 위험한 일인 한 대중은 끊임없이 금지된 책을 추구한다. 이후에 금지가 해제되는 책은 곧 잊힌다."
- <금서의 역사>, 67~68페이지


비록 종이책의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사람들에게 책은 어떤 상징이었다. 생각이나 이념 뿐 아니라 생활방식까지도 담아내는 상징. 결국 금서의 역사는 그 책이 상징하는 어떤 것을 금지하는 것에 관한 역사이다. 다만 우리가 역사라는 것을 말할 때 그 안에는 어떤 구체성이 필요하다. 역사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 <금서의 역사>는 금지되었던 책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금지하는 이유와 목적 뿐 아니라 그 방법 또한 다양하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다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교황청의 금서 목록 안에 파스칼, 데카르트, 칸트, 루소, 볼테르, 사르트르 등등 정말 유명한 철학자와 수학자들이 있었는데, 이 금서의 대상이 "추기경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되어있어야 해서 그들이 읽을 수 없는 언어인 독일어로 된 책들은 금서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실로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껍데기 행정 처리이다. 심지어 그것은 현대에까지도 이어지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키치스의 책도 금서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책은 세계에서 있었던 서적 금지에 대한 반복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금서라는 행위는 상징성 그 이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금서는 결국 서적을 금하는 주체, 혹은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일인 것이다. 그 가치관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도 책은 어딘가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책 안에 들어있는 생각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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