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이름은 임마꿀레
임마꿀레 일리바기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섬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래 제목은 left to tell이다 해석하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 늘 여운을 남기는 문장이다. 할 말이 있어 살아남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번은 나에게 주어진 이 생명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더더구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혹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왜 하필 나만 살아남은 것일까?’ 혹은 유신론자가 아니더라도 ‘신은 왜 나를 선택해 새 생명을 주신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리라. 이 책의 저자 또한 신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르완다대학살이라는 공포속에서 온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궁극적인 이유를 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과 구해진 답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삶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 ‘신은 왜 유독 그녀를 선택했을까’ 라는 질문보다 설령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더라 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죽음이 임박한 순간까지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죽음의 순간마다 빛나는 그녀의 지혜와 용기와 사랑은 아무렇게나 일상을 맞이하는 나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대학살이전과 대학살을 겪는 동안까지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삶에 대한 그녀의 경외로운 태도와 최악의 순간까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진지함에 어느 누가 감동받지 않을는지 오히려 다 읽은 후에는 종교와 관련없이도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그토록 아름답고 성숙하고 풍요로운 인간으로 성장시킨 그녀의 가족들을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되었다. 나중에 대학살의 결과를 다 알고 나서 다시 한번 책을 볼 때는 첫 페이지부터 눈물을 저절로 흘렀다. 특히 그녀의 오빠가 쓴 편지를 읽을 때와 자신의 고향마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대학살의 장면과 아름다운 풍광이 겹쳐지면서 눈을 주체하지 못해 여러 시간을 울었다.
여러날이 흐르고 감정을 좀 정리 한 후 다시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자식을 키우는엄마여서 그런지 나 또한 임마꿀레의 부모처럼 아름다운 영혼과 정신을 내 자식에게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자아가 드러나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임마꿀레의 아버지와 엄마는 자신들의 생명보다 마을사람들의 생명이 먼저 보이고 자신들의 먹을 거리보다 그들의 먹을 거리에 더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평등한 인격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부모밑에서 인생의 참 면모를 체득하며 자란 임마꿀레이였기 때문에 대 학살의 고통속에서도 인간의 본연의 참된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 가족의 사랑의 힘이 저력이 되어 불행을 딛고 의연히 일어나 앞날을 설계하고 인간을 다시 사랑하는 힘을 갖게 된 것은 아닐는지 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사실 부모와 형제를 모두 죽인 사람을 다시 용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중에는 맹세코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러나 임마꿀레가 사랑을 선택하게 된 것은 풍요로운 가족문화를 통해 습득한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 가족에게 종교는 신께 복된 것을 구하는 낮은 자세의 신앙이 아니라 인간을 진실로 사랑할 줄 아는 참된 믿음이었고 그 믿음을 현실에서 구현 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이들이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그녀를 선택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은 실로 위대하다.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를 살게 해준 그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어떤 종교이건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는 결국 참된 삶의 지혜를 갈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녕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진정성 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