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속의 보석 - 영국령 인도 타임라이프 세계사 14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전일휘 옮김 / 가람기획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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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무굴왕국의 전성기부터 인도의 영국식민지 지배 시대는 상당히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시기다. 책 자체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이 연민이 스며든 낭만적 이야기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식민지의 아픔보다는 식민지속으로 스며드는 영국인들의 무자비함보다는 거기에 존재했던 삶에 대해서 따뜻한 이야기들로만 풀어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굴의 샤자한 황제는 무굴 제국을 최고의 전성기에 올려놓은 황제이다. 그 앞에 영국인 대사가 파견되어 인도와의 무역을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 결코 굴욕적으로 꺽이지 않는 이 영국 대사 덕분에 그는 체면을 유지하고 샤자한의 승낙을 얻어낸다. 아직까지 유럽에서 강대국으로 존재하지 못하던 영국으로써는 동양의 향료와 차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전초기지를 확보한 셈이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와 경쟁하고 있던 때여서 그들의 힘의 우위비교는 결코 어느쪽으로 기울지 않던 시기다. 하지만 18세기 산업혁명의 시기는 그 폭발적 힘만큼이나 영국의 강력한 힘을 실어 해외 식민지 개척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준 때였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인도 분할점령은 무굴 제국의 약화와 때를 같이 한다. 각 지방의 토호들은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분할되고 야합하는 과정에 있었고, 이 틈에 영국은 서서히 인도의 땅을 조금씩 파고 들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과 다른 기후 환경 그리고 식습관, 인종은 영국인들에게 갖은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들은 끝내 영국식을 버리지 않았고 그 무더운 날씨에 조차 영국식 복장을 고집했을 정도다. 


영국이 인도에 식민지를 개척함에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인도로 들어온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만 이런 모험이 필요한 이동은 본국에서 낙오자들이 인생의 꿈을 품고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인도의 꿈의 땅이었다. 한방의 성공으로 영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황제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꿈은 현실적으로 나타나 그 당시의 집들 규모나 치장 상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책에 사진이나 그림으로 등장하고 있는 그 당시의 집들은 화려했던 무굴제국의 귀족수준을 넘었다고 한다. 


영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이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던 계층의 추함을 잃고 인도인들을 멸시했고 미개한 인종으로 봤다. 이들은 자신들이 단지 지배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만을 생각했고 이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삶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영국인들도 존재한다. 이들 덕분에 인도어, 샨크리스어 등의 번역이 이루어지고 인도인들의 삶이 영어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얼마나 가혹했으면 그들이 군인으로 이용하던 세포이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 잔혹함에 피의 복수를 불렀겠는가. 영국은 인도 지배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룬게 아니라 인도인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 그 위에 올라선것이다. 영국인들이 개발한 전신과 철도는 인도 근대화의 한 축이 되지만 그것은 인도의 피와 땀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철도의 발달로 인도의 곳곳이 식민지화를 촉진하게 되었고 신속한 군대의 파견으로 반란도 빨리 진압될 수 있었다.


이들은 넓어진 대륙의 땅에 영국을 옮겨놓고자 노력했으며 한치도 그틈을 벌어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인도의 무더위를 피해서 여름에는 여름별장으로 이동했으며, 아침과 밤에만 활동하던 그들은 하이에나와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보여주는 그들만의 낭만적 시대 상황은 1940년대가 되어서야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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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 손님이 줄을 서는 대박가게 만드는 비결
도미타 히데히로 지음, 이우희 옮김, 심상훈 감수 / 토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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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다보면 마지막 지름은 커피가게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현실적인 대안은 현재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정도다. 만일 내가 은퇴해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는 돈이 있고 취미로 가게를 열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취미의 끝일것이다. 이런 여유로운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현실적 위기감에서 창업들을 한다. 직장을 잃거나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하는 상황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위기감속에서 가게를 오픈한다. 그러다보니 절박함과는 다르게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경험 미숙을 보완할만한 충분한 준비도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고 운영도 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카페 같은 경우는 이쁘게 꾸미면 장사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이 책은 이런식으로 가게를 오픈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가게를 운영하는데 주인으로써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장사를 이어갈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하고 종업원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가게를 유지하고 번창하게 할 수 있는 마인드를 심는 방법등에 대해서 다룬다. 


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창업 마인드의 잘못된 점들을 일깨워준다. 항상 목좋은 자리가 성공하고 1층에 자본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 좋다라는 마인드에서 소규모로 지역밀착형 가게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는 창업에 대한 잘못된 부분들에서부터 대기업,대자본에 맞서서 소규모 가게들이 지역 밀창형으로 살아남을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사장의 마인드와도 밀접한 부분이어서 정말고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확립하고 자리를 잡아야한다는게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지만 아무런 목적없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부분들 혹은 절박감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경우 많다. 이럴수록 자신이 세워둔 원칙이 있다면 그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상황 판단을 좀 더 현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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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왕조사
김성원 지음 /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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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초창기 역사는 인도와 분리되어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석기시대나 청동시대, 철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분명 정착민들이 존재했지만, 왕조의 시작은 결국 인도인들이 넘오면서 시작되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영토적으로 지리적으로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공간이었다는것을 본다면 인도의 왕족이 미얀마 영토로 넘어와서 미얀마에 왕국을 세우고 역사를 시작한 부분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전 영토가 통일 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전체를 보기 보다는 이루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얀마 역사에서 강력한 왕조의 출현은 현 태국의 왕조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치앙마이, 야유타야 왕국까지 내려왔으며 완전한 왕조의 붕괴를 초래할 정도였으며, 치앙마이나 야유타야는 미얀마의 왕국이 강성함으로써 속국 혹은 하나의 자치 주로써 숨을 죽이고 지내야했다. 이는 현 방콕에 샴왕조가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기 전까지 미얀마의 국력이 쇠퇴하기전까지의 역사 부분이다. 이로써 강성한 미얀마의 힘은 얼마나 그 범위가 넓었는지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미얀마 왕조가 근대로 들어오면서 서구 세력과 접촉하면서 내부 갈등뿐만 아니라 외부의 갈등도 해결해야되는 상황이 된다. 네덜란드와 포루투칼의 힘 겨루기를 통해서 미얀마에 진출할려는 외부 세력들은 미얀마의 반란 세력과 연합하기도 하고 미얀마 왕조에 용병과 무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루투칼의 시대가 지나가고 프랑스와 영국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양상은 달라진다. 프랑스와 영국은 제국의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국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인도가 영국의 손에 떨어지고 그동안 미얀마와 끊임없이 접촉해오던 영국은 결국 미얀마에 무력을 사용하여 점령함으로써 마지막 힘을 발휘하던 미얀마를 하나의 인도 자치구로 만들고 만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 왕조의 부흥을 위해서 최신식 무기를 도입하고 제도를 개편하는 등 근대화의 열의가 있었지만 이미 그 시대는 영국에 기울고 있었다.


미얀마의 종교를 보면 인도와 스리랑카를 거쳐서 불교가 들어와 전통적인 낫 신앙을 대처한다. 하지만 민속신앙으로 낫 신앙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현재까지도 미얀마 전역에서 낫정령을 섬긴다. 미얀마 왕들은 불교 정화 운동과 국민 화합을 위한 불탑건설 내세를 위한 공덕을 위한 불탑 건설을 강행했다. 이 많은 파고다들은 전쟁시에 필요한 방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왕은 불교 승려의 조언을 얻어서 국사를 결정했고 그들의 영향력은 현재 군사정권에도 이어지고 있는 전통이다. 이 전통속에는 점을 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승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외부에서 보기에 미신적으로 보이는 이 행위가 미얀마 왕조들이 수도를 정할 때 항상 중요시 했던 요소이고 이 예언이나 점성술에 의해서 수도가 바가에서 잉와로, 버고로 이동했다(현 군사정권도 양곤을 버리고 새로운 수도로 이전할 때 이 점성술에 의존했다고 한다).


이 미얀마 왕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버마족과 소수 민족간의 끊임없는 갈등이다. 현재도 미얀마는 국민 화합과 융화라는 의미에서 버마족의 의미를 담고 있던 버마라는 국명에서 미얀마로 개명을 했지만, 역사적으로 샨족과 몬족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서 독립을 선언하고 투쟁을 계속했다. 이는 현대의 끝나지 않는 불화의 불씨의 연속선상으로 보인다. 특히 하부 미얀마에서 끊임없이 괴롭히던 몬족은 미얀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면 태국으로 망명을 했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미얀마로 되돌아와 반란을 일으키곤 했다. 또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상황에서 군내 정황이 불안해지면 바로 중국이 국경을 침범하고 미얀마를 위협했던 상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누적되어 현재의 미얀마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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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역사 트랜스라틴 총서 9
보리스 파우스투 지음, 최해성 옮김 / 그린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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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흔히 발견되어진 대륙이라고 한다. 서양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단절되지 않고 쭉 살아온 원주민이 존재하던 땅에 포르투칼의 함대가 도착함으로써 역사적 순간이 바뀌게 된다. 처음 서양인들은 그저 "해변가를 옆으로 기어다니는 게"들 처럼 해안가를 기점으로 정착지를 만들어갔지만 조금식 내륙으로 탐사를 하고 정착지를 확장해 감으로써 거대한 땅덩어리인 브라질을 만들어 간다. 


초기 내륙 개척에는 선교사들이 한몫을 담당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혹은 식민지 개척의 척후병으로써 오지로, 내륙으로 발을 디뎠으며 아마 신의 첨병으로써 그 역확을 충실히 수행했을 것이다. 이 교화의 과정이 과연 진정한 교화일까 원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병균을 이끌고 들어가서 그들을 파탄으로 이끌고 노예로 전락시켰으며, 결국은 소외된 타자로써 브라질 역사를 구성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 영화 "미션"의 그런 선교사의 영웅적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브라질의 역사에서 커피를 빼고 말할 수 없다. 현대로 접어 들면서 커피 농업의 중요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나름데로의 공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상태에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제1공화국과 그 이후의 바르가스 시절까지는 중요한 하나의 쟁점이었다. 대량생산 그리고 큰 수익원이었던 커피를 둘러싼 이익집단의 투쟁 그리고 여기에 수반하는 여러 정책들이 브라질의 큰 역사 줄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처음 대규모 농업을 이뤄서 수출에 성공한 작물이 사탕수수다. 하지만 이는 곧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특히 쿠바의 사탕수수 재배와 제 3국의 재배로 인한 품질과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뒤를 이어서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하고 주요 교역품으로써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물론 커피만이 주 생산작물이었던건 아니다. 여기에 면화 작물도 재배되면서 그 비율은 시기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커피는 세계 공황과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가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는 부농의 입김 작용이다. 커피 가격이 떨어지는 싯점에 커피를 일부 수매해서 폐기하는 것이다. 이는 커피 부농들에게는 당연한 처사지만 다른 작물들 지주에게는 반발을 일으키는 행위였다 - 커피로 인한 외채 상환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도.


브라질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대통령을 뽑았지만, 결국 정권이양이 순조롭지 못하고 군인에 의한 쿠데타로 인한 독재기간을 거친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와 비슷한 맥락을 보여주는데, 군인들에 의해서 행해지던 독재 기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 역사적 아이러니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결국 막을 내리고 만다. 하지만 이 역사적 아이러니를 평가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경제적 성장과 그 성장에 이면에 감추어진 희생 그리고 억압은 민중의 피끓는 외침을 이끌어내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폭발하게 한다.


브라질 근대에서 가장 큰 아픔이 있다면 민주적 절차를 거쳐 들어낸 사회가 고인플레에 의해서 가려져 버렸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했지만 멈출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처럼 솟아 오르는 가격은 결국 혁신적 화폐개혁을 불러온다. 화폐 개혁과 경제 조치들을 통해서 1990년대에 브라질은 다시금 성장의 길로 접어들어선다.


역사란 한순간만을 끊어서 고찰할 수 없으며 연속적인 응과응보의 결과로써 파악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현재의 과거와 단절될 수 없고 현재의 모든 순간들은 과거의 산물이기도 하다. 룰라가 성공적인 집권을 마치고 정권을 이양한 현 싯점에서 과연 브라질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역동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길이 과거보다 나은 미래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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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노 이야기 - 동네 철공소에서 자전거 업계 1위가 되기까지 세계를 제패한 성공 스토리
야마구치 가즈유키 지음, 손은환.강지운 옮김 / 엘빅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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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향수에서 시작하여 자전거를 타게 됐다. 어릴적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그 기억은 아련해서 그때 어떤식의 기분이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막연한 기억이 달릴때의 쾌감을 자극하고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그 향수에 맞춰서 자전거도 기어가 없는 픽시 스타일로 구매를 했다. 어떤 이들은 위험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장난감 자전거로 취급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아무것도 거추장스러울게 없어서 편한 어울리는 자전거라 생각한다. 


자전거에도 장비병이 심해서 고급 자전거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생활형 자전거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하지만 일단 자전거에 발을 들이면 대부분은 고급 브랜드와 장비를 추구하는 스타일들로 변하게 마련이다. 이런 고급 브랜드로는 자전거를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 아는 시마노와 캄파놀리아라는 브랜드가 있다. 전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전거 부품회사이고 후자는 오랜 전통과 자전거 역사를 같이 하는 이태리 브랜드다. 지금 읽은 책은 전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작은 철공소에서 시작해서 자전거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회사. 어쩌면 신화와 같은 존재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전거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본다면, 대체 자전거도 아니고 부품만을 만들면서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일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자전거 부품이나 거기에 들어가는 소모품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읽고난 지금도 느끼는건 자전거도 단순히 발로 젓는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닌 테크닉과 기계적 매커니즘 이해가 필요한 스포츠라는걸 미약하게 느끼고 있다.


자전거 역사에 있어서 캄파놀리아는 시마노를 훨씬 앞질러 있었다. 이제 막 태생한 시마노는 커다란 골리앗을 상대로 원대한 포부를 키워나가는 다윗이었다. 조그만한 제철소에서 시작한 시마노가 거대 기업이 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런 포부를 실현하기 위한 기업의 자유로운 연구와 이를 위해서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그에 맞춰서 아끼지 않는 투자는 호황기를 맞았을 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시마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신제품 개발이다. 이는 단순한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자전거 역사에서 획기적인 혁신을 이루어내는 과정의 산물들이었다. 이 혁신적인 산물을 만들어내는 직원들은 단순히 월급만 받고 그만큼 일하는 자세가 아니라 아낌없이 후원하는 회사의 지원에 맞춰서 자신의 삶의 일부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자세를 갖춘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봐도 어려울 것 같은 모습중 하나가 과감하게 사원을 해외 현장으로 내보는 것이다. 단순한 출장이 아니라 실제 자전거가 혹한 시련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기위해서 파견되는 것이다. 그 파견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가서 보고 익히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자율적인 방식의 지원이야말로 직원들의 최대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뚜르드몽드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시마노의 역사를 새로 쓴, 아니 이미 새롭게 쓰여진 페이지를 단순히 넘긴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무지한 소비자들조차 시마나가 만든 부품을 동경하고 비싼돈을 투자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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