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거의 공간사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3
전남일 지음 / 돌베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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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의 동네 골목길은 직선이 없는 곡선으로 이어지다 끝에서는 막히는 구조였다. 이는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모든걸 들어내기 보다는 감추고 숨기면서 필요한 만큼 들어내는 한국적인 곡선의 미학이었을 것이다. 이는 한마을을 구성하는 원리였고 담을 구성하는 원리였다. 

일제 시대 개발이 시작되면서 모든 전통들은 부정되고 서구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구호 아래 구불구불하고 감추어진 공간을 없애고 모든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직선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골목길만이 아니라 집을 짓고 이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계획되는 원리 자체가 서구적인 직선을 선호한 것이다. 전통적인 한옥은 여유로운 공간보다는 시대에 맞춰서 빠르게 그리고 도시화에 따른 인구 증가에 필요한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한 개발이 시작되었다. 한옥은 더럽고 열악한 환경을 의미했으므로 돈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열망하는 서구식 집이나 일식 스타일의 집들을 선호했다. 물론 이 와중에 절충적인 모습을 가진 양식의 집들이 등장했고 이는 인민들의 집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전후의 복구 과정에서 일본식 잔재를 답습한 개발을 지속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량공급의 주택들을 갖추기 위해서 단칸방과 부엌 그리고 출입구만을 가진 단순한 형태의 가옥들을 공급했고, 이 주택들은 어떤 주거형태를 고려하기 보다는 단순히 필요한 수요를 충족 시키기 위한 공급일 뿐이었다. 이 와중에도 고급주택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고 서구식 문화를 받아 들이는 과정의 절충적인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다. 남향 선호와 맞물려 안방은 서서히 남향쪽으로 이동하고 부엌의 높이는 점점 거실의 높이와 같아지고 있었다. 

군사정권하에서 획일화된 양적성장을 주거 공간 공급은 누구나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는 문화적 억압속에서 그 뿌리가 성숙하고 굵어져 버렸다. 이와 괘를 같이해서 아파트 공급이 급속히 늘어나고 집이 돈이 되는 투기의 대상으로 성장하였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속에 존재하는 삶의 표준은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며 그 속에서 서구식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고 서구식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으로 전형화하기 시작했고, 소득의 증가는 이런 실천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투기 바람속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집이 거주하고 문화적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재산증식을 위해서 잠시 거쳐가는 공간이 되고 만것이다.

이 투기의 바람은 아파트만이 아니다. 더 이상 부를 축적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이란 임대를 위한 생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밀도 높은 공간을 창출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세를 근원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도시 인민들은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밀도 높은 작은 공간들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은 공간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셋방과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그대로 느끼는 옥탑방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다세대 주택들로 대변되기 시작한다. 

현실의 아파트 숲속에서 좀 더 다양성을 향한 시도를 하는 건축가들이 늘어나고 그 형식도 전통적인 삶을 재해석해서 외부로는 닫혀있지만 내부로는 열린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 절충적인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이는 공간에 대한 현대적 시선이며,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혁신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을 받아 현대적으로 새롭게 창출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들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전통적인 생활관습에서 멀어졌지만 전통이 남긴 습관은 쉽게 단절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 곳곳이 전통의 흔적들이 남아서 변형되고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 주거의 공간이 그속에 내재하고 있는 생활의 철학적 사상을 무시할 수 없는 생각의 공간이 된 것이다. 답답한 아파트 공간을 벗어나서 여유로운 주거 공간을 꿈꾸는 단순한 꿈에서 어떻게 삶을 실천할 지 고민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건 더 비싼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천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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