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해러웨이라는 이름과 그의 사이보그 선언문에 대한 이야기는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보그 선언문을 정확히 어떤 뜻에서 작성했는지 모르고 지내던 와중에, 위 책을 접하고 그의 글을 자세히 읽게 되었다. 위 도서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권위자 도나 J. 해러웨이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쓴 글 열 편을 집약한 정수이다. 열 편의 글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고, 철학, 생물학, 동물사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담아내어 더욱 깊이가 있는 '대작'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쉽지 않은 논문들을 연속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집중하여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했다. 솔직하게 내가 지금껏 읽어온 페미니즘 책 중에서 가장 읽기 고됐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책을 공부하듯 읽는 체험도 오랜만이었고, 그만큼 해러웨이 사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출판사 소개 글에 있는 "무엇을 공부하든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문장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특히 우리가 가장 첨단의 객관화된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과 의학의 기저에도 젠더화된 가설이 뿌리박혀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해러웨이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논문을 통해 지적하면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사이보그'로 내놓는다. 인간과 동물 사이 영장류, 인간과 기계 사이 사오븍, 남성과 비남성 사이 여성, 즉 경계에 있는 존재들을 얘기하며, 우리는 사이보그가 되어 이원론적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1부와 2부에서 쌓아왔던 젠더화된 과학과 여성의 경험과 서사에 대한 쟁점들을 바탕으로 통쾌하게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부분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이러한 도발적 메시지는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쟁점이며, 연구되어야 할 이슈라는 점에서 이 책의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페미니즘 과학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삶을 다르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 투쟁만이 지배의 논리를 종식시킬 수 있다. (...) 이와 같은 관행이 자연을 이론화하는 우리를 이끄는 만큼 우리는 계속 무지하며, 우리는 과학의 실천에 개임해야만 한다. 이것은 투쟁의 문제이다. (p. 122-123)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권력이 객관화하고 총체화하는 권력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 타자는 생명과학과 인문과학, 자연과학과 인본주의라는 쌍둥이 담론에서 좀 더 리얼한 것 바깥에 자리함과 동시에 생산된다. 이것이 '서구'의 지식을 괴롭히는 차이의 창조다. 이것은 합법적인 계보에 복종할 때여야만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담론 생산에 각인된 가부장제의 목소리다. (p. 144)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p. 328)

사이보그 체현과 상황적 지식이라는 약속과 공포로 가득 찬 이런 차이의 장을 벗어나는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가능한 자기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로서 우리는 실현 가능한 미래의 기술자들이다. 과학은 문화이다. (p. 4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