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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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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 사회학 분야 1위,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타임>, <네이션>, <뉴요커> 등 유수 매체의 추천

이러한 엄청난 수식어들이 이 책의 대단함을 나타내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사회학 교수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매슈 데즈먼드 저자는 "미국처럼 가장 풍요한 나라에 어째서 이토록 많은 가난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해당 책을 서술한다.
"만일 미국의 가난한 자들이 나라를 세운다면 그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나 베네수엘라보다 인구가 많을 것이다. 미국인 아홉 명 가운데 약 한 명-어린이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을 포함해서-이 가난하다. (...) 공립학교 학생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집 없이 모텔, 자동차, 쉼터, 버려진 건물에 거주한다. (...) 미국인 200만 명 이상이 집에 수도나 양변기가 없다." 미국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미국의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놀란 부분이 많았다. 캘리포니아 한 주의 경제 규모가 캐나다를 능가하고, 뉴욕주의 경제는 한국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는다. 결국 미국의 가난 문제는 단순히 자원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불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증가했지만, 이는 저소득층의 월평균 소득은 쪼그라든 반면, 상위 20%의 소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도 2020년 15.3퍼센트로, 미국(16.6퍼센트)에 비해 약간 낮을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가난은 단연 미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책의 목차를 보면 우리는 왜 더 많이 진보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노동자를 싸게 부려 먹는가, 우리는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하는가 등의 뼈 때리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해당 주제에 대한 저자의 흥미로운 현장연구 사례와 함께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난 문제의 민낯을 직시하면서 정밀하게 현실을 탐사하고 해결책을 의논하는 지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많은 부와 값싼 물건을 즐기려고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무엇을 거부당하는가? 행복, 건강, 생명 그 자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인가?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자본주의밖에 허락되지 않는가? (p.118)

*지금의 정부 원조는 제로섬이다. 최대 규모의 정부 보조금은 가난에서 헤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가족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잘사는 가족들을 계속 잘살게 만드는 쪽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자원은 적어진다. 그것이 우리의 설계이고 우리의 사회계약이라면 최소한 그렇다고 인정히야 한다. 최소한 자리에서 일어나 고백해야 한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국가다,라고. 가난한 미국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당신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p.175)

*빈부의 분리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오염시킨다.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부유한 이웃들 옆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놀고 신입생활을 할 때,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각하고 점점 편협해질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내면에서 질 나쁜 성정이 고개를 들고 편견과 도덕적 붕괴에 부채질을 한다. 빈부가 뒤섞인 지역사회에서 서로 얽히고설키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맹점을 의식하고 고립된 편견의 방을 나와, 빈곤선 훨씬 위에 있는 가족들 역시 빈곤선 아래 있는 가족들을 괴롭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p.26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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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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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해러웨이라는 이름과 그의 사이보그 선언문에 대한 이야기는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보그 선언문을 정확히 어떤 뜻에서 작성했는지 모르고 지내던 와중에, 위 책을 접하고 그의 글을 자세히 읽게 되었다. 위 도서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권위자 도나 J. 해러웨이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쓴 글 열 편을 집약한 정수이다. 열 편의 글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고, 철학, 생물학, 동물사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담아내어 더욱 깊이가 있는 '대작'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쉽지 않은 논문들을 연속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집중하여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했다. 솔직하게 내가 지금껏 읽어온 페미니즘 책 중에서 가장 읽기 고됐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책을 공부하듯 읽는 체험도 오랜만이었고, 그만큼 해러웨이 사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출판사 소개 글에 있는 "무엇을 공부하든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문장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특히 우리가 가장 첨단의 객관화된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과 의학의 기저에도 젠더화된 가설이 뿌리박혀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해러웨이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논문을 통해 지적하면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사이보그'로 내놓는다. 인간과 동물 사이 영장류, 인간과 기계 사이 사오븍, 남성과 비남성 사이 여성, 즉 경계에 있는 존재들을 얘기하며, 우리는 사이보그가 되어 이원론적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1부와 2부에서 쌓아왔던 젠더화된 과학과 여성의 경험과 서사에 대한 쟁점들을 바탕으로 통쾌하게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부분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이러한 도발적 메시지는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쟁점이며, 연구되어야 할 이슈라는 점에서 이 책의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페미니즘 과학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삶을 다르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 투쟁만이 지배의 논리를 종식시킬 수 있다. (...) 이와 같은 관행이 자연을 이론화하는 우리를 이끄는 만큼 우리는 계속 무지하며, 우리는 과학의 실천에 개임해야만 한다. 이것은 투쟁의 문제이다. (p. 122-123)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권력이 객관화하고 총체화하는 권력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 타자는 생명과학과 인문과학, 자연과학과 인본주의라는 쌍둥이 담론에서 좀 더 리얼한 것 바깥에 자리함과 동시에 생산된다. 이것이 '서구'의 지식을 괴롭히는 차이의 창조다. 이것은 합법적인 계보에 복종할 때여야만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담론 생산에 각인된 가부장제의 목소리다. (p. 144)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p. 328)

사이보그 체현과 상황적 지식이라는 약속과 공포로 가득 찬 이런 차이의 장을 벗어나는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가능한 자기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로서 우리는 실현 가능한 미래의 기술자들이다. 과학은 문화이다. (p.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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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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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독보적인 여성 서사를 보여주는 작가 강화길의 신작 『풀업』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을 통해 출간되었다. 어머니와 두 딸이 등장하는 여성 가족 서사가 그려지지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따뜻한 관계는 엄마 영애와 둘째 딸 미수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미수가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고, 그녀에게 기대는 영애 사이에서 첫째 딸 지수는 소외되고 무시당한다. 지수는
"대학을 재수해 들어갔고,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다 떨어졌으며, 당연한 수순을 밟듯 취직도 늦는"(10쪽) 사람으로, 전세 사기를 당하고 엄마 집에서 살게 되면서 가족간 갈등은 심화된다.

어느날 지수는 매일 운동하는 여자를 마주치고,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운동을 통해 지수는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주체성을 되찾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꿈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소외와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말미에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풀업 운동을 시도하는 지수의 모습은 그녀의 성장과 이미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괄호를 통한 서술 방식이었다. 『풀업』에서는 괄호가 내가 지금껏 봤던 어느 소설보다 더 많이 쓰여졌는데, 이 괄호의 기능이 흥미로웠다. 괄호 안의 서술자는 상황 및 심리를 부연 설명해주며, 독자들이 지수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치 얘기를 들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첨언하는 느낌을 주어서 인상적이었다. 또한 세 모녀의 내밀한 감정선을 괄호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하여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p. 69 운동을 배운 지 겨우 한 달 반이었지만, 지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새벽 지수를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p. 83 다만 영애 씨는 짐작했던 것 같다. (그랬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미수가 그네를 높이 타는 걸 보면서 말이다. 저 애가 나의 자랑이 될 거라고. (나를 책임지게 될 거라고.) 그렇다면 지수는 뭐였을까. 겁이 많고 쉽게 포기하는 아이. 험악한 예언을 들어도 아무 말 못하는 아이. 뭐든 동생보다 부족한 아이. 대학도 취업도 모든 게 다 늦은 아이.

p. 89 지수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수는 시들어가는 식물이 아니었다. 설사, 시들어간다고 해도, 베란다 한구석에 계속 처박혀 있고 싶지는 않았다. 지수는 빛이 필요했다. 빛을 원했다.

p. 98 하지만 지수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한 삶. 빨래와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생활비를 나누어 내고, 필요할 떄마다 곁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삶 말고, 그냥 영애 씨와 지수의 삶. 엄마, 엄마는 나랑 사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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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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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의 독소전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였다. 그 당시의 자료를 통해 그 전쟁의 배경과 스탈린그라드 포위전에 관해 자세히 보았고, 이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전쟁이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최악의 전쟁, 독소전 한복판에서 저격병으로 지낸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 속 시골 마을에 살던 주인공 세라피마는 독일군에 의해 엄마와 마을 사람 전부를 잃는다. 그 후 그녀는 스승 이리나를 만나 저격병이 되어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배경으로 소련 여성 저격수들의 삶과 더 나아가 전쟁에서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독소전쟁의 실제적인 상황을 자세히 보여주어 더욱 몰입감을 높였다. 또한 단순히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공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기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연결되어 진실된 여성 서사를 그리고 있다.

책의 저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고 전쟁 속 여성들의 비참함을 소설로 표현하기로 결심했다 한다. 논픽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나왔듯이, 남자들과 똑같이 전쟁터에서 싸운 여성들은 전쟁중에는 무시받고, 전후에는 불편한 존재로서 소외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워 실감나면서도 마음 아픈 이야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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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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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괴담 형태의 소설 6개를 모아 놓은 청소년 단편소설집이다. 전형적인 학교 괴담같은 소설, 보다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시킨 소설, 미묘한 첫사랑을 담아낸 소설 등 제각기 다른 분위기의 6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어, '이 중 너의 취향이 하나 쯤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소설 두 편은 권여름 작가의 『영고 1830』과 조진주 작가의 『그런 애』다.
『영고 1830』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의 학업 스트레스에 관련한 이야기와 괴담이 합쳐져 생생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학교의 삭막함과 주인공의 괴로움이 선명하게 느껴져 더욱 몰입하면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애』는 배우 지망생인 '솔희'가 SNS에 노출 사진을 올리는 사실을 그녀의 절친인 '예나'가 알게 되며 진행되는 이야기다. 사실 괴담이라기 보다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니의 구멍'에 관한 소문과 두 주인공의 우정을 연결시킨 따뜻한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어 더욱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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