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식민지 시대, 경성의 거리를 스케치하다.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을 되짚어보고 있었는데, 만문만화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었다. 역사의 모습을 신문도, 글도, 라디오 방송도 아닌 신문 한 귀퉁이에 연재되던 만화에서 찾고 있다니. 만문만화라는 장르는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였고 근현대사 공부를 게을리 하고 기피하였던 나로 하여금 이 책을 거리낌 없이 집어 들게 하였다.

 이 책의 주된 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 만문만화였다. 만문만화란 글과 그림이 혼합된 장르로서, 말풍선으로 상황을 직접 제시하던 일반 만화와 달리 풍자적이고 희화화된 그림으로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그에 대한 서술문을 옆에 나란히 기재하였다. 주로 다뤘던 내용들은 그 당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로, 식민지 조선에 마구 밀려들어왔던 서구의 근대 문물들이나 사상에 대한 풍자나 비판, 당시 조선을 활보하던 모던 껄과 모던 뽀이들의 모습 등이 담겨있었다. 그 글과 그림을 보면서 당시 조선을 바라보던 작가의 시선을 찬찬히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경성이라는 한 도시 안에서 남촌과 북촌, 즉 일본인이 살고 있던 부자촌과 조선인이 살고 있던 극빈촌이 공존하고 있었다. 서구 신문물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모던 껄들과 모던 뽀이들이 살고 있었던 반면, 그것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한, 혹은 거부하고 저항 했던 구시대 여성들과 일명 도포짜리들도 살고 있었다. 자유연애에 빠져 유부남인데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여성과 연애를 하는 일이 벌어지는가하면, 자신의 정조와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발생하였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하기에는 그 당시 조선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격동의 시기를 만문만화는 '너무 냉철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특히나 경제적 능력이 따라 주지 않았던 가난한 시기에, 백화점 쇼윈도나 영화 등의 매체를 접하면서 신문물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던 모던 껄이나 모던 뽀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더러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만남으로 벌어진 재미있는 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림에 나타나는 자유로운 필체와 그 상황을 재치 있게 묘사하는 작가의 위트는 책을 보는 내내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말주머니도 없이 오직 한 컷만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했던 만문만화의 특성상 표현의 한계가 있을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자잘한 사건의 전개를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간결함은 독자에게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만큼의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중세 시대의 성화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문맹이 많았던 중세 시대에 성화는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성서를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성서의 내용과 교훈을 전달하였는데, 이는 성서라는 글로 된 매체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내용들을 널리 알려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그림 한 컷은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위력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또 그림 옆에 있던 글들에서 나타났던 당시 조선의 말씨(예를 들어 ‘마이 쁠류-히븐’, ‘안녕하섯습닛가?’,‘긔생의 엽헤는 가지 안키로!’ 등등)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꾸 보다보니 익숙해졌고, 또 곱씹어 보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 맞춰보는 묘미가 있었다.

 사실, 만문만화에서 나타나는 그 당시의 모습은 작가의 눈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진 것들이라 과연 ‘이것이 경성의 모습이다.’라고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편견을 배제하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다보니, 혼란스러웠을 당시의 상황 속에서 작가의 ‘만문만화’가 철없는 모던 뽀이들에게 따끔한 회초리 역할을, 또 그 시대를 올바르게 가도록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대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너무나 닮은 모습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령 유행에 민감했던 당시의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고 ‘따이아몬드’를 좋아하고 여우 목도리 같은 모피를 두르고 다니던 모던 껄들의 모습은 지금의 ‘된장녀’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특히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는 그 당시부터 뿌리 깊게 박혀서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아픈 것이었다. 그 당시의 부조리나 잘못들이 단지 현재의 모습과 우연의 일치로 닮은꼴인 걸까? 역사의 모습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식민지 조선, 우리나라의 근대 모습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탄압으로 인해 많은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만화 한 컷에 담아 막힘없이 펼쳤던 작가. 그 작가의 작가정신은 미술을 전공하는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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